[인천/경기/인천人, 인천을 말한다]<6>김광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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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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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中企는 여전히 기회의 땅”

김광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은 16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성공하려면 기회의 현장인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말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김광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은 16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성공하려면 기회의 현장인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말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성공하려면 중소기업을 가십시오.” 오뚝이인생을 살아온 김광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70)은 젊은이들에게 중소기업 취업을 적극 추천한다. “중소기업은 생산부터 마케팅, 인사 등 기업의 모든 분야를 배울 수 있어 추후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현장입니다. 그 증거가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많은 기업인입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성공할 곳은 많습니다.”

20세 때 경기 화성에서 인천으로 와 인천 건설업계 대표로 성장한 김 회장은 젊은 날 실패부터 말했다. “인천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친구가 부모님이 주신 사업 종잣돈을 가지고 사라졌어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미군부대에 취업해 돈을 모아 수인역(신흥동)에서 곡물 장사를 했습니다. 동업을 해서 제법 벌었는데 그것도 한순간 판단을 잘못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남을 탓할 수 있었지만 ‘살면서 허황된 욕심은 내지 말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평생 좌우명이 됐다.

역경은 건설업에 투신한 30대 후반에도 왔다. 지인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건설업을 시작했지만 5년 만에 오히려 많은 빚을 지게 됐다. 그의 재기는 1983년에 인천시청 앞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현실화됐다. “처음 짓는 아파트였습니다. 돈을 벌기보다는 ‘저 아파트는 김광식이 지은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진정성이 통했는지 지역업체로는 이례적으로 모두 분양됐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건설업체가 줄도산이 났을 때도 인천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존한 업체가 됐다. 무차입경영의 성과였다. 욕심을 버리고 분수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후 정광종합건설은 건실한 업체로 자리 잡았다. 협력업체와도 30여 년 한결같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회장이 중시하는 것이 기업인의 사회적 역할이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인천지회장, 사랑의 쌀 나눔운동본부 운영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천부의장, 인천시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등을 지냈다.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제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으로 감사하게 맡았습니다. 사회에서 얻은 혜택을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죠.” 김 회장이 수장을 맡았을 때 그 단체의 활동이 침체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긍정의 힘과 오뚝이 같은 일 추진은 그곳에서도 통했다. 새마을협회 회관 건립, 아마복싱의 활성화 등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10개 경로당 어르신들 위안 행사와 효도관광 경로잔치를 10년 넘게 열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 경로효친 사상이 사회에서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을 뿐입니다”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의 열정은 2008년 8월부터 인천상의 19대, 20대 회장 선출로 이어진다. 3년여 특유의 인화력으로 재계 화합과 지역경제 발전에 힘쓰고 있다. 2010년 1월 인천자유무역협정(FTA)활용센터를 전국 최초로 개설해 FTA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그해 3월에는 인천녹색성장지원센터를 설립해 지역업체가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인천을 떠나는 기업을 줄이는 것이 일자리 창출의 선행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상의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강화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인천지역 중소기업의 공장용지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경제 발전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으로 2014년 완료된다. 현대엠코와 공동으로 조성 중인 강화산단은 전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수요자인 기업체들이 중심이 되는 개발 방식이다. 현재 높은 분양률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인천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그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천은 신포동 신흥동 등 도심을 제외하고는 곳곳이 판자촌이었고 논밭에 초가집도 있었지요. 송도국제신도시 청라지구 등 최근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인천은 항구가 있어 늘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자리가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인천을 보배라고 부릅니다. 인천은 늘 기회가 넘치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에게 하는 부탁의 말로 마무리했다. “정치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뽑았으면 도와줘야 합니다. 잘못하면 따끔하게 꾸짖고 정책도 건의해야지요. 시민이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인천의 주역은 인천에 사는 우리입니다.”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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