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철우]지역 혈우병치료센터에 인센티브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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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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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혈액종양학과 교수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혈액종양학과 교수
최근 한 혈우병 성인 환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뇌출혈 증상을 일찍 느껴 가까운 병원을 찾았으나 치료제가 없는 등의 이유로 병원 두 곳을 전전하다 수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했다고 한다.

혈우병은 혈액 내 출혈을 멎게 하는 응고인자들 가운데 응고인자 8번 또는 9번이 선천적으로 없거나 부족해 발생하는 유전성 출혈 질환이다. 혈우병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해 대부분 남성에게 발병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통증’의 여자 주인공처럼 드물게 여성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혈우병환자단체인 한국코헴회에 등록된 환자는 약 2000명이고 등록하지 않은 환자를 포함하면 약 3000명으로 추산된다.

20세기 초까지 혈우병 환자는 특별한 치료를 받지 못해 90%가 20세 이전에 사망했으나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혈우병 치료제를 환자에게 적절히 투여하면 정상인처럼 생활하는 게 가능하다. 국내 혈우병 치료도 혈액 응고인자 제제를 사용하게 된 1970년대 이후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1988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으로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줄면서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누리게 됐다.

비교적 충분한 혈액 응고인자 사용이 보장된 국내에서 혈우병 환자가 응급 출혈 때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해 의사로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혈우병 치료 선진국에서는 지역 혈우병치료센터를 통해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작은 상처든, 관절 근육 뇌출혈이든 혈우병 환자의 출혈은 응급 상황이다. 따라서 혈우병 환자는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 및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지역 중심의 혈우병치료센터가 40여 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혈우병치료센터는 모든 혈우병 치료제를 갖추고 혈우병 전문의, 정형외과, 재활의학 전문의 등으로 치료팀을 구성해 혈우병과 관련된 모든 치료를 한다. 또 환자가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 등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통합 치료시스템 덕분에 혈우병 환자 사망률과 진료비가 감소하고 혈우병 환자들의 평균 수명과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선진국에서 혈우병치료센터는 환자에게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치료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비해 국내 혈우병 치료 상황은 아직 열악하다. 주요 대학병원이 혈우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전체 병원의 5.3%만이 모든 종류의 혈우병 치료제를 갖추고 있을 뿐 나머지 병원들은 치료센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까운 병원에 치료제가 없으면 환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먼 곳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 실정이다. 국내 혈액 응고인자의 60∼70%가 혈우재단 산하 의원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환자들의 불편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사가 처방한 혈우병 치료제에 대한 보험금 지급액을 과도하게 삭감해 병원들이 혈우병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혈우병 환자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는 차치하고 대부분의 병원이 혈우병 진료 자체를 축소하거나 심지어 중단하고 있다.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혈우병 환자들에게 ‘약’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체계적인 치료를 위한 혈우병치료센터는 방치해 한편으론 또 다른 ‘병’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선진국처럼 환자들이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과 의지 속에 지역 혈우병치료센터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혈우병 치료시스템을 갖추면 혈우병 환자 역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혈액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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