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아우라’ 신재평 “포스트 유희열? 말도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6일 10시 03분


코멘트

○베개로 키스연습? 사실을 이야기한 것뿐
○또박또박 영어발음은 잔재미, 시험은 잘 봐
○늘어난 넉살은 유희열에게 물들었을 것

‘비음’이 매력이라고 말하자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젠 더 이상 부끄러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호감을 느끼고 칭찬해주는 청취자들이 있어 용기를 얻는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비음’이 매력이라고 말하자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젠 더 이상 부끄러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호감을 느끼고 칭찬해주는 청취자들이 있어 용기를 얻는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형들이 라디오에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선배의 조언에 충실한 '햇병아리' DJ가 있다. 교육방송에서 '베개에 키스 연습'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감기약을 먹은 날은 '선물 남발' 조증 진행을 한다. 바로 듀오 페퍼톤스의 신재평(30)이다.

한때 인디계의 아이돌로, 2004년 데뷔 당시 동갑내기 멤버 이장원과 함께 카이스트(KAIST)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석 달 전부터는 EBS '아름다운 우리들의 라디오'(이하 아우라, 월~토, 밤 11:00~12:40)를 진행하고 있다.

29일부터 '청년시대-신재평의 라디오드림'으로 개편되는 이 프로그램은 '항우울제' 같은 음악을 지향하는 페퍼톤스와 닮아있다. '솔직발랄'하다. 스타카토처럼 끊어 읽는 이 '비음' DJ는 '정직한' 영어 발음과 '으헝헝' 웃음소리를 꾸밈없이 들려준다. 우렁차게 들리는 '꼬르륵' 소리도 '아우라'에서만 들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라디오 DJ의 '신지평'을 열어가는 신재평을 어느 여름날, 서울 신사동 안테나뮤직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하 신재평과의 일문일답이다.

Q. 처음 라디오 제의가 들어왔을 때 어땠나. 페퍼톤스 공연 때도 이장원이 주로 토크를 했다. 예전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이지형과 '모던음악 만만세' 코너를 할 때도 말을 걸어야 이야기했다.

-바로 윤석이형(루시드폴)한테 전화했다.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 윤석이형은 부산 사나이다. "지금 하고 싶으면 하고, 고민되면 하지 마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하겠다"고 했다. 100분 동안 청취자들과 게스트와 이야기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 겁났다. 윤석이형도 그렇고 스윗소로우도 그렇고 '거짓말은 안 된다'고 했다. 억지로 웃지 말고, 기분 나쁘면 그냥 티 내라고 하더라. 어차피 청취자는 안다고. 그날의 감정에 충실해서 꾸미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떨고 버벅거려도 그 모습 그대로 보여 드린다. 그게 사실이니까, 창피하지 않다. 멋 부리는 것보다 즐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Q. 초반에는 많이 긴장해서 실수도 잦았다. 'DJ가 얼마나 떠는지' 궁금해서 듣는 청취자도 있었고, '낫씽벗어송(Nothing But a Song)'을 '낫씽벗어'로 읽기도 했다. 지금 능숙한 진행을 아쉬워(?)하는 청취자도 있다.

-아, 낫씽벗어.(씁쓸한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일이라는 건 툭 던져지더라. DJ를 하고 싶었지만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평소에 달변도 아니고, 발음이 정확한 것도 아니었고. 뭐, 석 달 전 수줍고 어색한 내 모습을 좋아한다고 해서 지금 그걸 연기할 수도 없지 않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Q. '아우라'는 거의 매일 '보이는 라디오'(보라)를 진행한다. 부담은 없나. 나그랑티를 자주 입는다고 지적하는 청취자도 있다.

-'보라'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세수도 안 하고, 음악 작업 열심히 할 때는 집에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라디오 하면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정을 주는 청취자들과 만나니까 잘 보이고 싶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매니저와 같이 옷을 사러 갔다. 명동, 동대문, 인터넷 다 뒤졌다. 그런데 2달 지나니까 지치더라. 원래 꾸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이젠 똑같은 옷도 입는다.

Q. 잘 나오는 카메라 각도 등을 모니터링 하나.

-그걸 신경 쓸 사이가 없다. 첫 주엔 얼굴이 어떻게 나가건 덜덜 떨었다. 지금도 그렇고. 모니터링 하려면 바로 앞에 있는 카메라를 봐야 하는데…. 그걸 보면 청취자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그렇고, 청취자도 부끄럽다더라.

Q. 처음엔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신재평'이란 멘트도 수줍어하더니 이젠 '오빠'를 남발하는 닭살 멘트도 당당하게 읽는다.

-넉살은…원래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건 (유)희열이 형을 배제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희열이 형과 톤이 비슷하다'는 분도 있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희열이 형은 나에게 큰 사람이다. 아는 사람 중 말을 가장 조리 있게, 또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형과 가까이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닮아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생각보다 뻔뻔한데?'라고 느끼셨다면 그 영향이다.

가수 데뷔 7년 차인 신재평은 “아직도 카메라가 편하지 않다”며 어색해 했지만 이내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가수 데뷔 7년 차인 신재평은 “아직도 카메라가 편하지 않다”며 어색해 했지만 이내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Q. '포스트 유희열'이란 이야기가 있다. 유희열은 14년 경력의 라디오 DJ 선배이자, 같은 소속사의 동료이기도 하다.

-가당치 않다. 희열이 형은 하늘에서 내린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나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Q. 유희열이 S형(괴롭히는 쪽)이라면, 신재평은 M형(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라고….

-M? (숨넘어가게 박장대소) 실제로도 많이 놀림 받는다. 방송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희열이형이랑 있으면 형은 계속 놀리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무대에서 노래하다 말고 내 엉덩이를 스윽 만지고 갈 때도 있었다.

Q. 사랑받는다는 방증 아니겠나.

-음…. (목소리를 떨더니) 어떤 식으로든,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면 즐겁다.

Q. 라디오의 성격상 매일 출퇴근하게 된다. 달라진 점이 있나.

-하루하루가 의미 있다. 그전에는 없었다. 더 큰 덩어리로 살았다. 한주 단위라든지, 분기별이라든지. '4월까진 곡 만들자' 이런 식이었다. 이제는 하루를 건너뛸 수 없다. 성실히 살아야 한다. 초대 손님이 있는 날은 그 팀을 조사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도 한다. 생각보다 아주 똑똑해져야겠더라. 음악 할 땐 외골수가 돼서 깊게 들어가지만 DJ는 다양한 분야를 아는 게 중요하다.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관심이 저절로 생겼다. 신문도 보고 잡지도 꼼꼼히 본다. 그게 맞겠구나 싶었고. 선배들도 이야기해준 부분이다. 또, 누군가를 늘 만나러 간다는 느낌도 들고…. 사는 의욕이 생긴다.

Q. 두 달 반 정도 지났다. 잘 맞는 것 같나.

-DJ가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난 고작 석 달 했으니까 판단은 이르다. 현재 스코어는 '즐겁다'?

Q. DJ로서 목표가 있을 텐데, 수치로 표현하자면?

-DJ가 되서 세계를 정복할 생각은 없다. 가장 가까이에서 있는 명DJ가 희열이형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되기도 불가능하다. 그저 내 몫을 충실히 하고 싶다. 너무 욕심을 내면 무리해서 보기 싫은 모습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주어진 것을 즐겁게 하고 싶다. 점수를 스스로 매기자면 만점이다. 물론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칭찬받고 싶은 욕심은 있다.

Q. 스윗소로우 성진환은 요즘 '오빠~'하고 문자 안 보내나. 첫 방송 때 성진환이 '오빠~'라고 거짓문자를 보낸 걸 알고 분통을 터트리지 않았나.

-수상하다.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 라든지, 의심 가는 문자가 많다. 첫 방송 때 오지은 씨가 여고생 흉내를 내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지금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언제 어디서 (지인들이) 공격해 올지 모른다. 만리장성을 쌓는 중이다.

Q. 교육방송, 그것도 교양프로그램에서 '키스' 이야기를 신명 나게 하더라. 고등학교 시절 베개에 키스 연습을 했다는 것도 팬들에겐 충격이었는데….

-아…. (흔히 있는 일이란 사진기자의 말에, 몹시 기뻐하며) 맞다. 흔한 일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할 땐 전 국민이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 사실을 말한 거니까. 키스하고 싶은데 할 사람이 없으면 베개에라도 해야지 어떻게 하나. (그 밖의 야한 것(?)은 안 좋아하느냐는 말에) 평균 남성 수준에서 좋아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새벽 1시, 퇴근길의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냐고 묻자 신재평은 “소개되지 않은 청취자의 사연까지 전부 다 읽는다”며 “어떤 청취자는 이제 직업이나 나이도 다 안다”고 답했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새벽 1시, 퇴근길의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냐고 묻자 신재평은 “소개되지 않은 청취자의 사연까지 전부 다 읽는다”며 “어떤 청취자는 이제 직업이나 나이도 다 안다”고 답했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Q. 정직한 영어 발음도 비음이나 음 이탈처럼 이제 콘셉트다. '영어 말하기 시험을 신재평 만큼만 했으면'하고 놀리는 청취자도 있다.

-외국 나가면 인도식 영어를 구사한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니까 발음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이제 라디오에서는 잔재미처럼 돼서 부끄러움이 없다. 요즘에는 미리 읽으면서 연습한다. 좀 낫더라. 영어 시험 성적? 시험은 잘 본다. 학교 졸업할 때도 커트라인은 넘겼다. 말하기 시험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Q. 50회 특집에는 정재형이 나와 100분 동안 구박하고 갔다. 요즘 '대세' 정재형을 보면 요즘 무슨 생각이 드나.
- 정말 즐겁다. '슈퍼스타' 정재형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 이후 새로운 설이 나왔다. 우주가 정재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설이다. 얼마 전 재형이형 단독 콘서트 티켓이 1분 만에 매진됐다. 지인들끼리 장소를 상암 주 경기장이나 잠실 주 경기장으로 옮기는 건 어떤지 이야기했다. 그 넓은 곳을 피아노 한대로 채우고, '오솔길'이 흐르면서 폭죽 200개 터지고, 와이어로 형이 등장하고. 일단 후배들은 상황이 재미있다. 착하고 순수한, 정말 좋은 형이다. 우리가 형에 대해 느끼는 '근거 없이 호감'을 많은 분들도 느낀다는 점이 좋다. 그렇다고 형이 달라진 점은 없다. 요즘에 회식하면 형이 많이 쏘는 정도?

Q. 페퍼톤스 4집은 언제 나오나.
-아… 우리는 다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말을 아끼겠다.

Q. 가을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 무대가 있다. 5년째 개근 출연으로 장기계약설(?)이 있다.
- 협박하더라. 돈마니 대표(민트페이퍼 이종현 대표)가 '페퍼톤스가 와야 날씨가 좋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다. 봄 공연에 태풍이 왔는데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더라. 위로차 전화 드렸더니 역정을 냈다. 우리가 안 와서 비 왔다고. (웃음) 정말 좋은 분이다. 페퍼톤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주셨다. GMF와 페스티벌 모두 좋아한다.

Q. 100분 동안 수다를 떨지만, 청취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다 괜찮아요'가 끝인사다. 사실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고, 쉽게 털어버릴 수 없는 마음의 짐이 생기는 날도 있다. 어떤 사연이 왔을 때 냉철한 충고가 맞을 수도 있고, 비관적인 시선이 맞을 수도 있다. 매일 긍정적인 게 바람직하진 않다. 하지만 어디선가 누군가 끊임없이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좀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고집스럽게 '다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다. 더 오래 라디오를 한 후 이 이야기를 하면 더 멋있을 것 같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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