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전세버스를 타고 1시간 반 동안 엉덩이를 들썩이며 비포장도로를 구불구불 돌아 도착한 곳은 파주 문지리에 위치한 SBS 촬영 세트장. 이 곳에는 국가지도통신망실과 청와대 경호처 사무실 세트장이 지어져 있었다.
황량한 분위기는 날씨 탓일까. 비가 올 듯 말 듯한 우중충한 하늘에 모래를 잔뜩 실은 거센 바람이 수차례 불어왔다. 취재진들의 카메라와 노트북에는 모래가 한 움큼씩 쌓였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민호, 박민영, 이준혁, 구하라 등 '시티헌터' 주연 배우들은 기자간담회 내내 수다 떨 듯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이다. 큼직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네 명의 출연 배우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직 방송은 2회분 밖에 방영되지 않았지만 배우들 사이는 꽤나 친해진 듯 보였다. 황량한 현장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시티헌터의 출연배우들이 현장공개에 참석해 국가지도통신망실 세트장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광수, 구하라, 이민호, 박민영, 이준혁. 사진 출처=SBS
'시티헌터'의 주인공 이민호는 청와대 경호원 이윤성 역에 맞게 카멜색 롱 재킷 안에 깊이 파인 티셔츠를 입어 섹시함과 세련미를 드러냈다. 박민영은 극 중 김나나의 직업인 경호원 복장을, 검사 이준혁 역시 극 중 입고 나오는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대통령 딸로 나오는 구하라는 땡땡이 무늬의 큰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펄럭이는 레이스가 달린 흰 티에 청바지를 입어 통통 튀는 극 중 캐릭터를 재현했다.
자리에 참석한 김영섭CP의 말을 빌리면 동시간대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최고의 사랑' 때문에 힘든 시기를 갖고 있다고 했다. 1,2회를 본 시청자들이 '인기 일본 만화인 동명의 원작에 못 미친다', '시티헌터라는 제목이 아깝다'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의 표정에는 황량함이나 모래바람은 엿보이지 않았다.
▶ "우리 작품은 '시티헌터 비긴즈'라고 할 수 있죠"
이민호는 원작 만화 '시티헌터'와 비교해, 드라마를 '시터헌터 비긴즈'라고 했다.
"저희 드라마는 원작인 시티헌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티헌터 비긴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드라마를 통해 먼저 주인공의 성장 배경이 공개되고 이어 원작 만화에 등장해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앞서 드라마 '시티헌터' 1, 2회에서 이윤성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것을 염두하고 말한 듯했다. 이어 그는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야하니 각색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며 그간 원작과 다르다는 평에 대한 답을 전했다.
이어 원작에 나오는 카리스마 넘치는 호색한 주인공 사에바 료에 대해 "원작의 에피소드를 서너 개 봤는데 사에바 료를 공중파 드라마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며 "남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사에바 료를 스물다섯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이민호가 연기할 때 오히려 새롭게 탄생할 이윤성이라는 캐릭터를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원작 만화 ‘시티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료를 대신하는 이윤성 역의 이민호. 그는 “사에바 료가 아닌 이민호가 연기하는 새로운 이윤성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SBS 여주인공 박민영은 "배우로서 원작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박민영은 사에바 료의 파트너인 카오리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 카오리는 료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 때마다 100t 짜리 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는 말괄량이 아가씨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로서 원작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만 최대한 갖지 않기로 했다. 캐스팅되고 원작 캐릭터에 맞지 않게 왜소하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좋지 않은 평가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원작 캐릭터에 완벽히 만족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똑같이 따라하는 것 보다 내가 스스로 만든 '박민영의 김나나'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후의 평가에 대해서는 좋든 나쁘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원작과 비교한 드라마, 배우들에 대한 갖은 비평은 '시티헌터' 배우들에게 오히려 배우로서 또 하나의 철학, 작품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 쉬이 풀이 죽지 않는 자세를 알려준 듯 했다.
▶ 욕심 많은 배우들, 지난 촬영들은 "아쉽고 아쉬울 뿐"
배우로서의 자세를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 출연진에게 지난 촬영은 온통 아쉬움뿐이다.
이민호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2회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 회이기도 하다.
1회에서는 아웅산 테러사건을 주요 소재로 한 이야기와 이윤성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무술 실력을 쌓아간다는 내용이다. 2회 이후의 젊은 배우들이 펼치는 현대 사회 속 이야기보다 무게감이 있다.
이민호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1회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인데, 2회에서는 클럽신 등 가벼운 내용들이 등장한다. 대본 상으로 보면 조금 더 가볍게 갈 수 있는 신들인데 마냥 가볍게 가기에는 1회의 감정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민을 하며 재미를 살려야하는 부분도 잘 살리지 못하고 제 감정도 잘 살리지 못한 상태에서 2회 촬영을 진행했다"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박민영 역시 "캐릭터를 잘 잡지 못하고 촬영한 부분들이 있다. 1회 때는 첫 촬영인 대리 운전해주는 신이 만족스럽지 않다. 그 날 꽃샘추위로 강원도에는 함박눈이 오기도 했다. 그 추위에 오픈카를 타고 달려 다들 코가 빨개졌다. 떨리고 추워서 대사도 정확하지 않아 다들 보면 발음이 샜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첫 연기 데뷔로 연기력 논란을 일으킨 구하라도 "첫 촬영이라 떨렸다"며 "앞으로 나의 연기가 드라마에 잘 융화되고 극 중 최다혜의 철부지 캐릭터도 잘 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박민영과의 유도신, 떨렸냐고요? 네! 다칠까봐"
'시티헌터' 배우들은 연기에 대한 질문에는 진지하게 대답하는 반면 서로에 대한 이야기나 촬영 에피소드에 관해서는 시종일관 장난기 어린 반응을 보였다.
이민호와 박민영은 지난 2007년도 KBS 월화드라마 '아이엠 샘'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허물없이 친한 모습이었다.
‘시티헌터’ 2회 중 이민호와 박민영의 유도신. 이전의 타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은 허물없이 친밀한 모습이었다. 사진 출처=SBS 2회에서는 전직 유도선수 출신인 김나나가 MIT 박사 출신인 이윤성에게 유도 기술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나왔다. 유도를 배우던 이민호가 박민영과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원과 현빈의 윗몸일으키기 신에 버금가는 애틋한 느낌의 유도신이 혹시 떨리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박민영이 "사실 유도 장면을 찍고 불안했는데 촬영 분을 보고 안도했다. 아, 우리가 호흡이 잘 맞는구나 하고"라며 떨렸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민호에게 자연스럽게 넘겼다. 이민호는 "네. 떨렸습니다. 다칠까봐!"라며 웃었다.
이민호와 구하라의 콤비도 돋보였다. 구하라에게 "이민호처럼 잘생긴 과외선생님이 과외를 해주면 떨려서 집중을 할 수 있겠냐?"고 질문하자, 그는 마냥 웃기만 했다.
구하라는 뜸을 들이다 "음. 제가 이민호 선배님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데요. 사실 민호 아저씨보다 원빈 아저씨가 과외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에 이민호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다른 출연진과 취재진도 웃었다. 왜 원빈 아저씨냐고 이유를 묻자 "이민호 아저씨도 조각 미남이지만 원빈 아저씨가 더 조각 미남이기 때문에"라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내보였다.
또 클럽에서 춤추는 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구하라는 "사실 클럽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클럽신 촬영 후 클럽에 한 번 가봤다"고 밝혔다. 이에 옆에 있던 박민영이 "클럽에 갔다 와서 우리에게 자신이 배운 춤을 전수해줬다. 요새는 다들 이 춤밖에 안 춘다며 한 쪽 어깨를 돌리는 춤을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구하라는 "언니가 클럽 간지 오래돼서 궁금해 하길래 최근 유행하는 춤을 알려줬다"며 솔직한 대답을 이어나갔다.
차승원과 친분이 있는 이준혁은 경쟁 드라마 ‘최고의 사랑’ 주인공인 차승원에게 “‘시티헌터’도 재미있으니 꼭 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출처=SBS ▶ "차승원 형, '최고의 땡땡'도 재미있지만 '시티헌터'도 재미있어요. 꼭 보세요"
또 다른 주연 이준혁은 경쟁작인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 차승원과 막역한 사이다. 그는 2009년도 SBS 드라마 '시티홀'에서 차승원의 비서 역할로 인연을 맺었으며, 지난해에는 KBS2 '승승장구' 차승원 편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준혁은 "승원이 형이 나보다 먼저 촬영에 들어가 드라마가 먼저 방영이 됐다. 자신의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보니까 재미있더라. 그래도 우리 드라마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며 심정을 밝혔다.
이어 차승원에게 한마디 하라고 요청하자 "승원이 형, 요즘 뵙지 못했네요. 시티헌터 정말 재미있는데. 윤성(이민호)이가 독고진(차승원)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형의 드라마 끝나고 우리 드라마 10회분 정도 더 있으니 그때 '시티헌터' 꼭 봐요"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 모래바람을 견디고 새롭게 탄생할 한국형 '시티헌터'를 기대하며
배우들은 '시터헌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민영과 이준혁은 자신들이 출연하지 않은 1회 분량을 보고 "내가 출연하지 않아 맘 편히 볼 수 있었다"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매우 재미있었다"며 '시티헌터' 드라마에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원작과 비교한 쓰라린 비판들, 먼저 시작한 경쟁 드라마가 시청률를 선점한 불리한 상황들.
2007년부터 기획되어 왔지만 번번이 제작 난항을 겪고 2011년에 와서야 제작할 수 있었던 '시티헌터'의 제작 역사처럼 이들이 진행해 나갈 촬영의 역사도 만만치 않아보였다.
황량한 촬영 현장 속 거세게 부는 모래바람을 이겨내고 이민호가 말하는 '시티헌터 비긴즈'로, 김영섭 CP가 말한 '한국형 시티헌터'로 새롭게 탄생할 드라마 '시티헌터'를 기대해본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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