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영선]의약품 판매, 소비자 편익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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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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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선 KDI 연구본부장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팔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안전성과 약효가 검증된 일반의약품을 일반소매점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의약품을 처방약과 비처방약으로 구분한다. 처방약은 처방전을 근거로 약사가 조제해 파는 약이고, 비처방약은 약국뿐 아니라 일반소매점에서도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약이다. 또 독일에서는 더 세분해 처방약, 약국약, 자유판매약으로 분류하고 자유판매약은 약국 외에서도 팔 수 있게 했다.

대부분의 나라 소매점 판매 허용

외국에서 일반의약품을 약국 외에서도 팔 수 있게 하는 것은 소비자를 위한 일이다. 소비자가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일반의약품을 가까운 곳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약사들의 반대로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약사의 지도가 없으면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오·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충분한 기간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의약품의 경우 이런 가능성은 무시할 만하다고 봐야 한다.

약국의 개설권 규제도 과도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약국은 약사만이 개설할 수 있다. 예컨대 돈이 있는 사람이 약사를 고용하거나 약사들이 법인을 구성해 약국을 열 수 없다.

이런 규제는 소비자 편익의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하다. 누가 어떤 형태로 약국을 개설하든 약사만 처방약을 판매하도록 규제한다면 소비자 보호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또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다면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져 편익이 늘어날 것이다.

특히 여러 약사가 모여 법인 형태의 약국을 공동으로 운영할 경우 약국 규모가 커져 다양한 약품을 구비할 수 있다. 또 약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근무함으로써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도 향상시킬 수 있다. 법인 형태의 약국 개설을 금지하는 ‘약사법’ 관련 조항은 2002년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는 법 개정을 미루고 있다.

약사회는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대신 ‘야간 순환제 약국’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약국 개설과 관련한 규제로 대부분의 약국은 약사 1인이 운영하는 동네약국 형태를 띠고 있으며, 지금도 대다수 약사는 주당 6일간 매일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밤새워 근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불합리한 규제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정치인들이 약사들의 표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관계부처가 소비자의 관점이 아닌 약사의 관점에서 정책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국회와 관계부처가 일반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지 일부 이익집단을 대표하는 기관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

법인형태 약국 개설금지도 문제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 소위 전문자격사와 관련한 정부정책은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즉, 공급자 이익을 보호하는 데서 벗어나 소비자 편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만 남겨 놓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전문자격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전문자격사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특정 업무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했다면, 이들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도 철저히 감시 감독해야 한다. 또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처벌 내용을 소비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본말이 전도된 현재의 규제체계를 뜯어고치는 일은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나라를 서비스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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