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위대한 탄생’ 멘토들, 엄마에 비유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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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11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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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영화 '가족의 탄생'을 보고 신선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가족의 해체를 안타까워하는 이 시대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깨고 나타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아름답기도 했다.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급작스럽게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다. 공중파 못지않게 대중들의 호응을 얻은 케이블채널 M.net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MBC '위대한 탄생', 최고 가수들의 순위를 매기는 MBC '나는 가수다'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잔인한 게임이 최근 최대의 이슈다.

지난주 '위대한 탄생'을 보면서 '가족의 탄생'을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멘토와 멘티의 끈끈한 연결성 때문이었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떨고 있는 멘티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노래가 끝났을 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멘토들의 모습은 마치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그것과 같았다.

혹독한 게임 속에 숨겨진 따뜻함은 가족의 해체를 말하는 시대에서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이 탄생했음을 알리고 오히려 더 희망적인 미래의 모습을 제시한 '가족의 탄생'처럼,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현대인의 삶에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자유로움을 희망적으로 제시하는 IT업계 종사자들의 외침처럼, '위대한 탄생'도 우리에게 이 시대를 반영하는,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MBC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이자 멘토인 이은미 방시혁 김태원 김윤아 신승훈(사진 왼쪽부터) 사진제공 MBC
MBC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이자 멘토인 이은미 방시혁 김태원 김윤아 신승훈(사진 왼쪽부터) 사진제공 MBC

▶이은미=강한 어머니상, 김윤아=현대인의 어머니상…

멘토 김태원은 소위 '외인구단'이라고 불리는 어딘가 모자란 듯한 멘티들에게 "외로움과 싸운 당신"이라고 했다. 평가받는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밑바닥을 잘 드러내준다. '나는 가수다'에서 그 잘난 가수들이 떨고 있는 장면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살 떨리지만 흐트러지면 안 되고, 너무 경직해서도 안 되고, 웃거나 웃어도 안 되는, 그야말로 '안 되는 것' 투성이라 더 긴장되는 외로운 분투다. 같은 멘토의 멘티여서 손 꼭 잡고 있지만 결국은 경쟁 상대일 뿐인 서로는, 서로에게 외로움을 더해주는 대상이다.

'슈퍼스타 K'와 차별화 된 '위대한 탄생'의 재미는 멘토와 멘티의 만남이다. 멘티들을 뽑고, 키우는 멘토들은 엄마의 역할을 담당한다. 멘토들이 멘티의 당락을 바라보며 울고 웃는 장면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데 그 중심에는 멘티들을 자식처럼,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멘토들의 적극성이 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적절한 훈육이 필요하듯 멘토들은 기나긴 여정동안 모질게 혼내고 다그치고 때론 충분히 공감하고 격려하면서 멘티들을 끌고 간다.

거침없는 혹평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 이은미를 누구보다 강한 어머니상에 비유할 수 있다. 여려 보이지만 야무지고, 감정에 호소하나 결정적인 순간에 객관성을 잃지 않는 김윤아는 개인주의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현대인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한편 간결하나 가슴을 후비는 멘트로 어수룩하나 딱딱한 껍질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던 멘티들을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온 생명체로, 열정의 사나이들로 재탄생시킨 김태원은 나무처럼 우뚝 서서 따뜻하게 공감하는 이만하면 괜찮은 어머니의 좋은 예가 된다.

더불어 멘티들을 위해 최초로 자신의 집까지 공개한 신승훈은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내어준 허용적인 어머니에, 어떤 순간엔 누구보다 날카롭고 무섭지만 풀어지면 한없이 아이같은 방시혁은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어머니에 비유하면 어떨까.

일부에서는 '위대한 탄생'이 생방송으로 전환되며 멘토들이 객관성을 잃었다고 지적하는데, 일단 가족이 된 이상 객관성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멘토 김태원(왼쪽에서 세번째)과 멘티 이태권 백청강 손진영.
멘토 김태원(왼쪽에서 세번째)과 멘티 이태권 백청강 손진영.

▶탈락한 멘티들 웃을 수 있는 이유,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키웠기 때문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위대한 탄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순간순간 울컥했다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패자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와 닿는 시대가 아닐까.

최근 심사위원단의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도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 못해 떨어진 정희주는 이렇게 말한다. "꿈같은 시간이었고 탈락할 때만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온다"고.

희망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현재라서 우리는 종종 허황된 꿈을 꾸고 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냉정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될 때 스스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어 심리상담실에 찾아오곤 한다.

실제로 대학 상담소에서 오랜 시간 상담원으로 있으면서, 삶을 지극히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사실상 누구보다 큰 꿈을 키워왔으며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겪었던 상처가 엄청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가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상담자는 이 희망의 불씨를 최대한 키워주되, 허황된 꿈을 좇아 나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경계한다.

정희주를 비롯한 멘티들이 겪은 6개월의 경험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언제든 또 다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탈락할 때만큼은 울지 않으려 했다는 그 말이, 어느 순간 더 올라가지 못한다 해도 충분히 힘이 생겼다는 건강한 다짐처럼 들린다.

'위대한 탄생'은 결국, 멘토들의 지지와 격려, 따뜻한 위로가 엄마의 품이 그리운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멘티들이 선사하는 희망의 메시지와 공감을 통해 얻은 재탄생의 신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회가 거듭될수록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들이 분노하기도 떠나기도 하는 이 시점에서 분명 프로그램의 비판점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탄생'이 '가족의 탄생'을 연상시키는 긍정적인 면은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이계정 상담심리 전문가 lisayi@naver.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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