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 아닌 판사가 당했어도 영장 기각할까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시위 현장에서 채증(採證) 활동을 하던 경찰관을 군중 속으로 끌고 가 몰매를 맞게 하고 카메라를 빼앗은 민주노총 직원에 대해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법 영장담당 판사는 동아일보 기자와 통화에서 “피의자가 채증을 당하니까 증거를 없애려는 생각에서 몸싸움 정도는 벌였겠지만, (시위현장에서) 당연히 예상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카메라 탈취가 마치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이다. “그 경찰관의 카메라가 유일한 채증 방법도 아니었다”는 판사의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피의자는 서울 용산 참사를 비롯한 각종 집회에 상습적으로 참여한 시위꾼으로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미디어법 반대집회 때 경찰 카메라를 빼앗아 특수강도 등 혐의로 영장이 청구됐다.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폭력으로 방해한 범법행위를 판사가 ‘당연히 예상되는 정도’로 경시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고서도 우리 사회의 법질서 유지와 법의 지배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만약 판사가 판결의 증거 확보를 위해 현장검증에 나섰다가 같은 피해를 당했어도 영장을 기각했을까.

판사의 영장 기각에 경찰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공무집행을 하란 말이냐”고 항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폭력시위에 대한 사법부의 일부 관대한 판결이 특정 판사들의 편향된 이념 때문인지, 시위현장의 상황을 잘 몰라서인지 우리는 궁금하다. 판사들 가운데 과연 몇 명 정도가 이번 영장 기각 사유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판사들이 불법 폭력시위가 빚고 있는 사회적 파장과 비용을 외면하고 ‘재판의 독립’만을 외친다면 설득력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쌍용차 사태가 보여주듯 시위 양태가 날로 폭력의 도(度)를 더해가고 있다. 쌍용차 노조 시위 현장에서는 노조원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젊은 전경이 다수 다쳤다. 대형 새총은 물론이고 군사 장비를 방불케 하는 다연발 무기와 화염방사기까지 등장했다. 전경을 향해 새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발사하는 행위가 여러 날 반복됐다.

이렇게 폭력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전경을 공격하는 행위는 철저한 채증과 수사를 통해 엄벌해야만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법관이 경찰관의 채증을 방해하는 폭력 행사에 대해 이렇게 관대해서야 허물어져가는 법과 질서를 누가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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