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주저앉는 나라들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올해 여름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휴가지에서 웃통을 벗었다. 검도와 유도로 다져진 몸짱 몸매를 선보였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푸틴의 다부진 근육과는 달리 죽을 쑤고 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러시아가 고유가를 바탕으로 세계를 향해 큰소리를 쳤는데 이제는 힘이 빠졌다. 슈퍼의 상품진열대가 비어가고, 기업들은 비효율과 빚에 허덕이고 있다. 그에 따라 소비도 줄면서 경제는 수축하고 있다. 1990년대 초 구소련의 해체로 힘을 잃어가던 모습과 다시 겹쳐진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강국 4개국을 일컫는 브릭스(BRICs)에서 뒤처진 지 오래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금융 강국의 면모를 자랑하던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제2의 월가로 불리던 런던의 금융가 시티 지구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지난해 초반 수준을 회복하려면 6년을 기다려야 하고, 실업자가 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소비가 줄면서 디플레이션 나락으로 빠져들 조짐마저 보인다. 영국(Great Britain)이 아니라 작은 영국(Little Britain)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개입하면서 미국의 2중대로서 활동해온 데 대한 내부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때 우리 경제를 깎아내리는 데 열심이던 영국의 언론도 이제 할말이 없게 됐다.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부침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나라로 부러움을 사던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기금을 받는 나라로 전락했고, 헝가리나 체코 등 동유럽 강국도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 나라가 추락하는 직접적인 고리는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다. 하지만 버티는 정도, 맷집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 원인을 정교하게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얼핏 사회 시스템의 차이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러시아는 군사비 지출 비중이 높은 데다 사회 시스템마저 완전치 않다. 영국은 사회 시스템은 갖춰져 있으나 지도자들의 잇단 외교정책 판단 미스와 실물보다 금융에 치중한 결과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로스 레빈은 국부(國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회적 기술’을 꼽았다. 72개국을 분석한 결과 나라의 부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천연자원, 정부 정책역량, 물리적 기술도 중요하지만 법의 지배와 재산권, 정비된 금융제도, 투명성 등 사회제도적 요인, 즉 사회적 기술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10위를 넘봤던 우리 경제 규모는 올해 15위로 내려앉았다. 한때 충만했던 자신감은 많이 쪼그라들었다. 그 원인은 경제 분야만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70여 일간 계속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의 공장점거 농성, 미디어법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 광화문광장에서 시위의 자유 보장 문제…. 힘을 모으기보다는 편을 가르고, 긍정적 에너지보다는 부정적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사회이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느냐가 그 사회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인이고 국부의 기초가 된다. 언제 그 시스템이 갖춰질 것인가. 갈 길이 먼데 다리를 잡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긴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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