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기오]입학사정관에 선발권 보장을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우리나라는 매년 수십만 명 규모의 대학입학생이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과 고교내신기록이라는 정보문서파일이 대학과 입학 대기자를 이어주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적 장치였다. 이 상황에서 서울대가 2011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선발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대학사회에 파급 효과가 클 것이며 성공하면 고등교육사에 한 획을 긋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대입, 내신 등 계량 자료에 집착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기계적으로 수량화되는 형식적 증거, 즉 ‘엄격한 증거’에 매우 집착했다. 한 사회의 도덕성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직 타율적 인습적 도덕성 수준에 머무는 모습이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 경직성과 획일성 비효율성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지극히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다루는 교육상의 학생선발 결정조차 이런 경향에 지배됐으며 입시지옥이라는 한국교육의 병폐는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입학사정관의 역할 확대는 대학과 대학입학 대기자를 이어주는 전문가 집단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한다. 전문가란 무엇인가? 고도의 훈련과 경험을 토대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선진사회는 전문가의 활동을 다양한 분야에서 보장하기 위해 엄격한 증거의 원칙을 대체하는 실질적 증거의 원칙을 광범하게 채용한다. 실질적 증거란 확보된 정보와 그에 따른 전문가의 판단을 이어주는 최소한의 합당한 논리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지금까지 과도하게 의존한 엄격한 증거 대신 전문가가 중시하는 실질적 증거를 정당한 의사결정의 기초로 수용하는,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풍토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과연 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입학사정관의 선발 결정에 대한 불만에 따라 앞으로 늘어날 재판 결과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국사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현상 너머에 있는 이데아와 본질을 탐구하는 데 집중해온 서양사회와 같은 합리적 지성의 전통이 결핍돼 있다. 작금의 입학사정관제 도입 과정에서 우려되는 또 다른 점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정책적 토론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너무나 입학사정관이라는 겉모습에 매몰된다는 데 있다. 사실 대입제도가 발전하려면 입학사정관이라는 현상 자체보다는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대학생 선발의 원칙과 이념, 그리고 논리가 더욱 중요하다. 대학의 자유의사에 따른 법률적 표현의 하나로서 자신이 원하는 학생을 택할 수 있는 학생선발권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 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거쳐 왔다. 이 논쟁의 해답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입학사정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정관보다 선발원칙-논리 중요

입학사정관이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에이전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입학사정관제가 대입 선발 과정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대학의 학생선발권 보장이라는 커다란 원칙이 먼저 사회정치적 합의와 입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분명해져야 한다. 이것이 결여된 채 도입하는 입학사정관제의 앞길은 매우 험난하다.

논리적 수준에서 말하자면 모든 제도는 인간의 지성에 근거한 논리와 이념의 반영이어야 하며 이를 빠뜨리는 순간 제도가 아닌 인습 또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서울대가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면서 무엇보다도 신경 써야 할 점이 여기에 있다. 물론 서울대는 국립대로서 공공의 책임과 학생을 위한 서비스 부분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지역균형선발에 입학사정관제를 우선 적용하는 방안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매우 긍정적이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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