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모 곁불 쬐는 민주당, 바짝 엎드린 정부 여당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2003년 11월 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선 “특정 정당이 한쪽 지역을 독식하는 정치 구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창당축하 메시지가 낭독됐다. 열린우리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해 당선시킨 민주당을 ‘낡은 지역주의 정치세력’이라고 몰아붙인 친노(親盧)세력이 주도해 만들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타고 과반의석을 이룬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5월 29일 저녁 청와대 만찬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노 대통령과 감격을 나누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중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열린우리당은 ‘노무현과 거리두기’ ‘노무현 때리기’로 돌아섰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연전연패의 책임자로 노 대통령을 지목해 탈당을 압박했다. 결국 2007년 2월 노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다. 그해 대선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호적’을 바꾸었고 정동영 손학규 씨 등 경선후보들은 반노(反盧) 또는 비노(非盧)를 표방했다.

올 4월 초 노 전 대통령의 비리혐의와 선을 긋는 발언이 잇따랐다. 그달 10일 이종걸 의원은 “노무현 색깔 빼기 없이는 민주당의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에 이틀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어떤 연유로 이것(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게 됐는지 명백한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민주당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후신인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는 계승 작업과 추모사업 방침을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정치보복이 부른 억울한 죽음”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추모 분위기를 타고 ‘노무현 곁불 쬐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권 책임론’이 나오자 바짝 엎드려 여론의 눈치만 살핀다. 경제 위기 속에서 실직과 생활고(苦)로 내몰리는 서민과 약자를 끌어안을 비전과 쇄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방위 도발 위협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미디어 관계법 등 산적한 현안을 다룰 6월 국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청와대도 시국에 대한 고뇌 어린 성찰과 실천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난국을 헤쳐 나갈 책임을 망각하고 정략과 보신주의, 기회주의로 세월을 보내다가는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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