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규한]실험실 닫아버린 과학교육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일본 도쿄대의 젊은 교수와 노무라증권 연구원 등 23명이 집필한 ‘50년 후의 일본’은 우주관광 여행, 동물언어 번역기, 지진 감지 스마트 토양, 로봇 만능가정교사의 시대를 예측한다. 일본은 이처럼 창의성을 요구하는 기술을 집중 지원한다. 우리 정부도 중점 과제에 8조 원 이상을 지원한다. 미래의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포함된다. 한국 학생은 과학올림피아드에서 해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학부모도 자녀 교육에 적극 동참한다. 그런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의 교육 경쟁력은 세계 60위로 분류되며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1명도 없다. 교육비 지출은 증가하는데 학력 저하는 가속화된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고학년이 될수록 떨어진다. 교육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교육현장을 돌아보자. 과학의 시작은 호기심과 지적 욕망인데 초중등학교 수업은 호기심 유발이나 문제 발견보다는 50년 전 방식인 교과 내용 중심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마저 과학실험이 아니라 이론필답시험 위주의 대학 진학에 목표를 맞춘다. 초중등학교 실험 환경과 실험교육 프로그램이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른 봄 나팔꽃과 호박씨를 텃밭에 심고 싹이 터서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일기를 쓴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아침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여 잠을 설쳤다.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하는 과학교육은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현장의 과학실험 내용이나 실험 기자재 역시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교과과정이나 정책 개선에 앞서 과학교사가 50년 후를 준비하는 식으로 변해야 한다. 학생과 실험용 비커를 씻으면서 과학적 토론을 해보자. 실험으로 때 묻은 선생님의 낡은 실험 가운에서 학생의 과학 마인드가 자란다. 교사의 교수법도 학생이 과학하고 싶도록 진행되는지 교사는 자성해야 한다.

엄마는 아이가 창의적인 과학적 마인드를 얻는 일보다도 시험 점수에 더 기뻐하고 과학영재만을 바란다. 그러면서도 과학영재로 가는 과정은 소홀히 한다. 군고구마가 삶은 고구마보다 더 달다. 게나 새우를 익히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왜 그럴까라는 일상적인 문제에서부터 엄마가 아이와 나누는 간단한 대화가 과학 영재로 가는 첫걸음이다. 아이와 접하는 시간이 많은 엄마의 과학 마인드가 아이의 창의력 향상과 꿈나무 기초과학자 양성에 더없이 중요하다.

과학은 실험에서 시작됨을 노벨상 수상자의 경험이 보여준다. 첨단과학기술 사회에 살면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휴대전화기, 냉장고, MP3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우리 학생은 잘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학교는 미래사회에 부응하는 실험교육 인프라 환경을 재구축하고 미래형 과학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야 한다. 초중등학교에서 실험을 중심으로 한 과학 전담교사도 활용할 만하다.

과학실험교육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학교가 실천에 옮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대학입시제도에 있다. 일본의 대학은 면접에서 과학실험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은 입시에서 내신성적 SAT 자기소개서 추천서 사회봉사활동 동문면담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특히 자기소개서와 추천서에 담긴 수험생의 과학 마인드나 과학 활동 경력을 높이 평가한다. 수험생이 가진 현재의 과학지식보다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KAIST 서남표 총장의 제안과 일치한다. 내년부터 확대 시행할 대학입학사정관 제도가 학생의 실험탐구 능력이나 과학 마인드, 과학 활동 경력을 평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김규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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