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서서히 고개드는 과잉유동성 후유증

  • 입력 2009년 4월 29일 03시 02분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한다. 통상 불황이 장기화하거나 경제와 금융시장이 구조적 불안정에 빠져 있을 때 나타난다. 지난해 글로벌 위기가 발생하면서 각국은 경제원칙을 무시한 채 공급보다는 ‘뿌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막대한 자금을 방출했다. 금융시장을 방치할 경우 세계 경제 시스템이 파국에 처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위기 이전에 가계는 주택과 주식 등 투자자산, 기업은 생산력 확충에 능력 이상의 돈을 투자했다. 금융기관은 신용 파생상품 투자로 엄청난 손실을 봤고, 과다한 대출금은 회수조차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의 무제한적인 자금방출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잉 유동성이 조금씩 순환되면서 최근에는 주가가 반등하고 주택가격에도 하방경직성이 높아졌다. 그만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글로벌 위기가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나면서 과잉유동성에 따른 후유증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구리 등 일부 원자재 가격과 농산물, 서비스 요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낮은 금리 때문에 고삐가 풀린 자금들은 투기적이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저평가된 자산에 기웃거리고 있다. 그동안의 디플레이션 위험이 조금씩 인플레이션 위협으로 변질되는 모습이다.

물론 글로벌 자금시장의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신용카드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대출의 연체율이 오르고 있다. 안정적인 것으로 파악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와 달리 연체율이 추가 상승할 경우 재차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은 낮은 공장 가동률과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공산품 가격이나 인건비 상승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자금시장이 정상화할수록 과잉 유동성은 시장의 안전장치에서 불안요인으로 역할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각국 정부의 과도한 채권발행으로 금리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따라서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기존의 정책목표는 조만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최근 자산시장이 부분적으로 정상화되고 위기의식이 약화되면서 일부에서는 풀린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미세한 안정은 역사상 최고의 부채 버블을 막대한 정부 부채로 막고 있어 그나마 가능한 것이다. 실물경기와 고용의 불안정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과잉 유동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위기 상황은 아직 종착점을 모른다. 그래서 포괄적이고 장기적 관점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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