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구속과 불구속 사이

  • 입력 2009년 4월 27일 19시 42분


이틀 뒤, 대검 청사 포토라인에 서는 처지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사를 다 가늠할 길은 없다. 어쩌면 썬앤문 사건 때 법망을 피한 경험을 위안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2년 11월 고교 동문인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동석한 측근 2명은 검은돈을 받은 혐의로 이듬해 기소됐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무사했다. 측근들이 돈을 받을 때 ‘몇 걸음 앞에 걸어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이 부인과 조카사위, 아들이 돈을 받았을 뿐 본인은 ‘왕따’였던 것처럼 주장하는 건 썬앤문 사건을 연상시킨다.

자신에 대한 불구속, 심지어 불기소 주장까지 나오는 것도 위안이 될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을 거론하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된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국가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주장까지도 한번쯤 음미해볼 만은 하다. 하지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궤변은 황당하다.

‘노무현 불구속 수사론’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17일 가장 먼저 제기했다. 그는 “형사소송법은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한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모습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법관 출신 정치인답게 법률논리와 정치논리에 양다리를 걸쳤다. 2002년 대선 패자가 승자의 날개 없는 추락을 지켜보며 여유와 아량이 생긴 걸까. 하지만 혐의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고 ‘전직 대통령 구속=국가 수치’라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법치국가의 수치’에 해당하지 않을까. ‘대쪽’은 원래 없었음을 이 총재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검찰이 직접 신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섣부르고 부적절하다. 검찰이 추정하는 ‘피의자 노무현’의 혐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9∼12년의 징역형에 해당한다.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고 살인죄의 형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구속의 한 기준이지만 중형 예상도 중요한 기준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처리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철학에 반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가 ‘법 위의 법’으로 확인될 것이다.

전직 대통령 구속이 국제적으로 미칠 악영향 때문에 불구속해야 한다면 앞으로 재벌기업 총수들도 모두 불구속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대상을 넓히면 언론인 구속은 언론탄압, 즉 반(反)민주여서, 기업인 구속은 시장에 악영향을 미쳐서 곤란하다.

‘도덕성의 화신(化身)’처럼 행세하던 전직 대통령을 부패 범법 혐의가 드러나도 구속만 하지 않으면 나라 체면을 지킬 수 있다는 건 무슨 논리인가. 그런 논리보다는 ‘전직 대통령으로 국민의 자존심까지 훼손한 데다 법치에 대한 교육효과가 더 크므로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논리가 상대적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검찰이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수사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검찰은 증거 위주로 철저히 수사하고 구속사유에 해당하면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권력과 책임은 비례해야 제대로 된 나라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 없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로 평가되면 불행 중 다행으로 국가 이미지가 오히려 올라갈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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