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투데이]‘2차 유동성 거품’의 부작용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6분


경기 논쟁이 치열하다. ‘어두운 숲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이 상징하듯 비관론 일색이던 경기 인식이 어느새 ‘최악은 면했다’는 쪽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같이 낙관론이 퍼져나가는 데는 근래에 발표된 미국의 경제지표들이 호전 기미를 보인 영향이 크다. 이를테면 주택시장의 거래량이 증가하고 신규주택 건수가 늘어났다는 소식, 또 일부 생산지표가 개선되고 골드만삭스 등 핵심 금융회사들의 이익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부동산과 그로 인한 은행의 지표가 안정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위기가 해결 국면에 진입했음을 시사하는 중대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낙관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다. 은행의 부실채권 산정방식과 기준 회계연도 변경이 거슬리고 생산자지표의 호전은 소비지표의 호전 없이 재고 조정의 결과라는 점도 그렇다. 게다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과잉 생산시설의 설비 조정 문제다. 지난 10년간의 장기 호황은 설비투자의 과잉을 불러왔다. 특히 선진국의 금융 과잉 못지않게 개발도상국의 설비 과잉은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글로벌 은행의 파산이나 구조조정은 위기의 일면일 뿐 머지않아 실물부문의 2차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견해는 단지 ‘설(說)’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두 번째 심각한 문제는 ‘2차 유동성 거품’의 부작용이다. 보통 경기침체가 바닥에 이르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쌓이면 자산시장은 이를 선반영해 6∼10개월 먼저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최근 두 달간의 글로벌 주식시장 상승은 상당히 고무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바닥 대비 20% 이상 상승한 미국 증시와 세계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한 코스닥, 또 서울 강남 부동산의 가격 상승은 경기회복을 선행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냉정하게 보면 ‘위험 신호’다. 자산시장에서 먼저 나타나는 ‘유동성 장세’는 설비 조정이 끝나고 은행 시스템에 자금 수요가 둔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자산시장의 상승은 이러한 흐름과는 무관하게 단지 돈이 많이 풀려서 일어난 것이다. 즉, 은행 시스템에 요구되는 돈은 여전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과다 공급된 화폐로 인해 돈이 움직인 결과인 것이다. 이는 뱃놀이가 아니라 홍수에 구명보트를 타고 떠도는 것과 같다.

즉, 표면적으로 볼 때 ‘유동성 랠리’는 맞고 돈의 힘으로 인한 자산시장의 상승은 약간의 조정 후 한동안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경기 회복의 징후’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강남 재건축시장의 움직임에서 보듯 경기회복을 위해 투입한 자금이 자산가격의 투기적 상승을 이끌어 내게 되면 조만간 투기 억제를 위한 통화 환수냐, 경기 회복을 위한 완화 지속이냐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투자자건 정책당국이건 정말 밝은 눈으로 하나하나 앞을 잘 살펴야 할 때다.

박경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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