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民情·司正을 무력화시킨 정권의 末路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아들 형 조카 측근들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청와대 민정·사정(司正) 조직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13위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는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과 가족의 부패 스캔들이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민정·사정 라인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은 국민여론 및 민심동향 파악, 공직·사회기강 관련 업무와 법률문제 보좌,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조직이다.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비리 소지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핵심 기능이며 존재 이유다.

하지만 노 정부 청와대의 민정 라인은 대통령 가족과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청와대 문턱을 넘나들며 수십억 원에 이르는 박 회장의 검은돈을 받는 동안 아무런 경보를 발하지 못했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비서관은 재직 중이던 2004년 12월 박 회장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킨 격이다.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의 민정·사정 조직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노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민정·사정 기능을 ‘핫바지’로 만들고서는 어떤 권력자도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종찬 전 고검장은 2003년 변호사 사무실 개업자금으로 동생에게서 박 회장의 돈 5억4000만 원을 빌렸고, 박 회장과 관련해 석연찮은 소문에 휩싸였다. 초대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 씨는 청와대를 나온 뒤인 지난해 9월 박 회장의 돈 2억 원을 받고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 게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전화 청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추 씨는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나서야 체포됐다.

대통령 주변의 부패 비리에 대한 자체 정화(淨化) 기능이 마비되면 정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국가적 체면까지 훼손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과 주변을 부패의 유혹과 공세로부터 차단하는 일은 대통령의 책무이자, 온전한 전직 대통령을 갖고 싶어 하는 국민의 바람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