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MBC의 희생양 분장술

  • 입력 2009년 4월 10일 02시 55분


MBC가 딱하다. 최근 6개월간 채널별 평균 시청률이 지상파 3사 중 꼴찌다. ‘뉴스데스크’ 일일 시청률도 3월 한 달간 SBS(8뉴스)를 앞선 적이 거의 없다. 1∼3월 광고 매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5억 원이 줄었다. KBS 263억 원, SBS 292억 원의 감소에 비해 3배가 넘는다. 불황기에 광고 기업들이 시청률이 낮은 MBC를 기피한다는 분석이 있다. MBC는 최근 명예퇴직 조기시행 등 비상 경영안을 발표하면서 ‘생존’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힐 정도다.

더 딱한 건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일 때마다 이 정권의 희생양으로 ‘분장’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다우너(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의심소로 연결시킨 ‘PD수첩’ 관련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과 맞서고 있다. 지난해 7월 MBC에 시청자 사과 명령을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박명진 위원장은 심의에서 “오역이 미국소는 광우병소, 아레사 빈슨은 인간광우병으로 죽었다는 방향으로 굉장히 특수하게 이뤄졌다. 이 오역이 바로잡혔다면 어떠했을까”라고 제작진에게 물었다. 검찰이 궁금해하는 대목도 이것이다. MBC는 ‘PD수첩’의 취지가 정부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에 수사가 부당하다고 하지만, “의도가 순수했다”며 그냥 넘어가려는 그들의 주장은 아마추어에게나 어울린다. 프로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MBC는 또 라디오 프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 씨와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 교체 건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경영진이 김 씨를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교체하려 하자 라디오 PD들이 반발했다. 신 앵커 교체에 반대하는 기자들은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전국언론노조가 이에 대해 ‘정권에 부역하겠다는 항복 선언’이라고 성명을 낸 것처럼, 두 사안은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MBC는 올해 초 신방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관계법안에 대해서도 민영화를 통한 ‘MBC 죽이기’라며 반대의 총대를 멨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평균 임금이 1억여 원에 간부 직원이 절반이 넘는 ‘고비용 고령화’ MBC는 좋은 상품이 아니다. 지분 매입비도 최소 수천억 원이 들고, 막강 노조로 인해 ‘노영(勞營) 방송’으로 불리는 MBC를 운영하겠다는 곳이 나올지 의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MBC가 불공정 지적을 무릅쓰고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동원했던 행태는 자신이야말로 탄압받는 희생양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MBC는 6월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할 때도 같은 행태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 하락과 광고 판매액의 급감은 시청자들이 MBC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특히 MBC에 대한 평판도 적신호다. MBC와 공연을 준비했던 중견 연극인은 “(비전문가이면서) 제작 과정을 좌우하려고 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MBC 계열사의 한 간부는 “업무를 갑자기 본사로 가져가더니 자기들끼리 챙기더라”며 울분을 토했다. 비슷한 말을 보조 작가 출신의 여성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울타리 밖 사람들에겐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MBC가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일정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현 MBC의 채널 이미지는 ‘흥분방송’ ‘아집방송’이 되는 것 같다. 게다가 MBC는 앞으로 다매체 수십 개 채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에 눈감고 매번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하고, 자기 식구만 챙긴다면 과연 MBC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생존은 경영 지표만의 문제가 아니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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