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정치·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19일에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노동자 120만 명(경찰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졌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200여 건의 시위 및 집회가 있었고 철도, 항공, 도로교통 운행이 파행을 거듭했다. 그러나 쇠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가 경찰을 팬다든지, 고무줄 총으로 경찰을 겨냥한다든지,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일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중도야당인 프랑스민주동맹(UDF)의 크리스토프 마드롤 전국위원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은 완전히 잘못됐지만 혁명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앞으로 선거에서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대혁명(1789년)과 68혁명(1968년)의 나라’ 프랑스가 자칫 격렬해지기 쉬운 갈등 속에서도 오늘날 안정된 정치시스템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일종의 ‘협의(協議)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 전통 덕분이 아닐까 싶다. 모든 집단이 대표자를 배출하고, 서로 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권력과 책임을 분산·공유한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야당과 노조의 비판 속에서도 소비 진작보다는 기업투자와 은행시스템 보강에 초점을 둔 경기부양책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학교원평가제와 신문업계 인쇄·배달노조 개혁 등 이해집단의 반발이 심한 사안에서는 정책 추진을 일단 정지한 뒤 여론이 조성될 때까지 설득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여당이 갖고 있는 의회 의안상정 권한을 야당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야당들이 아니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제안해 실현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으로 대치하는 ‘평행(parallel)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대시민혁명의 발원지인 프랑스는 갈등을 제도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반면 우리 정치권은 작년 말과 올해 초 폭력으로 얼룩진 1, 2차 법안전쟁을 치르고도 눈앞에 닥친 4월 국회 이후의 ‘뇌관’들에 눈감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특별법안을 중점처리 법안에 올리지 않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특별법안의 제정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또다시 때가 되면 힘으로 부닥치고 말겠다는 얘기 같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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