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야구와 마라톤의 희망찬가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요즘 스포츠 보는 낙으로 살아요.”

한 택시 운전사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손님이 부쩍 줄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라톤과 야구가 ‘희망 뉴스’라는 얘기였다.

15일 열린 2009 서울국제마라톤대회와 8강 라운드가 한창인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연일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삼성전자)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의 몸은 경기 초반부터 무거웠다. 시간이 갈수록 선두 그룹과는 멀어졌다. 하지만 불혹을 앞둔 마라토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시간16분46초로 14위. 통산 마흔 번째로 풀코스(42.195km)를 완주하며 선수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기록보다 아름다운 완주를 선택한 그는 이제 지도자로 제2의 마라톤 인생을 이어간다.

야구 대표팀은 WBC 아시아라운드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2-14, 7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그러나 1, 2위 결정전에서 1-0으로 이기며 복수전을 펼쳤다. 선발 봉중근(LG)은 일본의 자존심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를 연이어 범타로 돌려세우며 ‘안중근 열사’의 패러디 대상이 됐다.

한국은 16일 8강 라운드에서 이범호 김태균(이상 한화) 고영민(두산)의 솔로포를 앞세워 멕시코마저 8-2로 꺾었다. 18일 4강 티켓을 놓고 일본과 이번 대회 세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2006년 제1회 WBC 4강 신화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퍼펙트 금메달의 영광을 재현할 기세다.

마라톤은 ‘홀로’, 야구는 ‘함께’하는 스포츠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야구는 팀워크가 필요한 단체경기다.

마라톤에 중간 휴식은 없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반면 야구는 공수 교대 시간이 있다. 공격할 때 타자와 누상의 주자를 제외하고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본다.

기자는 그런 마라톤과 야구를 모두 경험했다. 2005년 서울국제마라톤을 처음으로 완주했다. 5시간16분7초. 서울 시내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지만 레이스 막판에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며 경기를 마쳤다. 체계적인 훈련 없이 과욕을 부린 탓이다. 야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즐겼다. 지난해 야구기자단 야구대회에서 종합지 팀의 대회 첫 우승이란 감격도 맛봤다. 하지만 이 역시 꾸준한 연습을 하지 않아 한동안 어깨,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유명 인사들이 본 마라톤과 야구는 어떤 모습일까. 소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신의 작품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느냐 아니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야구 기자 출신 레너드 코펫은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했다. 타자들은 공을 때리려는 ‘욕망’과 피하려는 ‘본능’ 사이에서 싸운다. 매 순간 득점할 가능성이 높은 작전을 선택해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게 그렇다.

마라톤과 야구의 준비과정은 닮았다. 마라톤은 경기를 앞두고 매일 수십 km를 달린다. 야구 역시 지루할 정도로 공격 수비 훈련을 반복한다. 본 무대를 위한 치열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경제 불황에 취업난으로 올해 서민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봉주의 도전 정신과 야구 대표팀의 패기가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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