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中전국인대, ‘거수기’ 노릇만 한다면…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開大會 決定小問題, 開小會 決定大問題, 不開會 決定關鍵的問題.’

중국의 정치과정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지식인 사이의 유행어다. ‘규모가 큰 회의에서는 사소한 정책만 결정하고, 규모가 작은 회의에서는 큰 정책을 결정하며, 매우 중요한 정책은 회의 없이 결정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큰 정치행사는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중국엔 대형 정치행사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형식적인 최고 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와 최고 국정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 정협) 회의다.

하지만 이런 정치행사에서는 어떤 중요 정책도 새롭게 도출되거나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 대사나 중요 정책은 대부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등 9명으로 구성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미리 확정된다.

더 중요한 중대 결정은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회의도 거치기 전에 몇몇 핵심 지도자나 국가원로가 비밀리에 모여 숙의한 뒤 결정한다.

이렇다 보니 전국인대나 정협이 인민을 대표하는 ‘하의상달’ 기관이 아니라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결정을 인민에게 전달하는 ‘상의하달’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전국인대가 형식적으로는 정부 업무와 예산에 대한 심사, 승인권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민을 대표하고 싶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3000명에 가까운 전국인대 대표들이 회의기간에 단 3분씩만 발언하려 해도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18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올해 전국인대의 의사일정은 8일 반에 불과하다. 단 한마디 발언도 못한 채 ‘거수기’ 노릇만 하다 돌아오는 대표가 부지기수다.

중국 지도부는 거수기인 이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조차 불안했는지 올해 더욱 ‘입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이 지도부 입맛에 맞는 ‘자화(假話·가식적인 말)’나 ‘쿵화(空話·빈말)’가 아니라 인민의 마음속에 있는 ‘전화(眞話·참말)’ ‘스화(實話·진실된 말)’를 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로봇 대표’를 동원한 이런 형식적인 민주주의만으로는 중국이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선진국가로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 지도부는 깨달아야 한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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