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건국 60년, 잔치는 끝났다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지난주 대부분의 대학에서 졸업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금년엔 떠나가는 이들의 발길이 유난히 무거워 보여 떠나보내는 쪽도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직접적 원인은 경제위기다. 대학이 약 50만 명의 인력을 사회로 배출하지만 막상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마이너스 2%의 경제성장률과 20만 개 정도의 일자리 감소, 그리고 유례없는 초임(初賃) 삭감이다.

하지만 이게 올 한 해의 우연한 불운이기만 할까. 조만간 경기가 되살아난다면 우리 모두는 작금의 시련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함께 기약하게 될까. 물론 정부의 주장은 그렇다. 우리 국민 특유의 위기 돌파력이란 것에도 일단 기대는 건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총체적으로, 또한 구조적으로 무너지는 경고음을 한 번쯤 경청할 때다.

우선 주목할 것은 계급 갈등에 세대 차가 뚜렷이 중복되는 최근 양상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나 내용면에서 세대 간 대결이 심화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MB) 지지율을 보면 50대 이상이 20, 30대보다 두 배가량 높다. 언필칭 1950년대 농지개혁 이후 최악의 빈부격차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많은 노장년층들의 보수성이 돋보이는 판세다.

청년세대, 사회진입 장벽 높아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이 기적 같은 60년사를 써 나가는 동안 국가와 국민은 대체로 동반성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위에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성공을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나라와 개인은 서로 닮은꼴이었다. 물론 예외가 있고 개인별 편차 또한 적지 않지만 장기 고도성장 체제와 동고동락한 구세대는 그래도 내 집 한 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고 자식들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100% 안팎의 주택보급률에다가 60%에 가까운 자가(自家)보급률, 그리고 85% 내외의 대학진학률이 이를 방증(傍證)한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 혹은 지금의 40대가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그 이하 20, 30대 청년세대에게 우리 사회의 진입장벽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거비와 교육비가 미친 듯 치솟아 부모 잘 만나는 방법 외에는 남부럽지 않게 사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 시대다. 평생 내 집 하나 마련하겠다는 꿈이 멀리 사라지는 가운데 자녀양육을 위해 하루하루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 대다수 서민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 그것도 모자라 세계 최고속의 출산율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하고 불길한 미래를 10대 청소년이라고 해서 결코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솔직하고 대담하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작년에 전국의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다섯 중 하나 가까이가 10억 원이 생긴다면 10년간 감옥에 갈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비상한 방법이 아니고선 우리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나름대로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조국에 대한 불신과 냉소다. 몇 해 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한국과 일본, 중국의 청소년에게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답한 비중은 한국이 10%로 최하였고,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말한 비율은 한국이 10%로 최고였다(일본의 경우는 각각 41%와 1.7%였다).

실질적 배려로 사회 대통합을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선행세대와 후속세대는 이미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형편에 애국심으로 청년층의 출산을 장려하려는 발상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념교육으로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바로잡겠다는 노력도 쇠귀에 경 읽기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에 애착과 자부심을 갖도록 명분 대신 실익(實益) 차원에서 배려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더 절실한 것은 노사 간 대타협이 아니라 세대 간 사회협약일 수도 있다. 사회통합에는 동시대적(同時代的)인 측면도 있지만 통시대적(通時代的)인 차원도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의 자화자찬이 무성했던 건국 60주년, 그 잔치는 작년으로 끝났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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