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사승]언론 규제완화, 승자독식은 안 된다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애들 다 찍었어요. 반장도, 1등도 다 찍었어요. 내신하고 상관없는데 뭐 하러 신경 써요.” 학력평가 고사를 본 중학 1학년 동네 아이의 말이다. 여당은 학력저하 대책 마련을 위해서라고 주장했고 야당은 학교 줄 세우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쯤 되면 학력평가의 전략적 가치나 결과에 대한 신뢰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세금 축내며 직업적으로 싸우는 정치인의 그럴듯한 명분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논리는 불완전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빤한 진실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곱게 다듬어진 개념의 세계가 아니다. 아이들 손가락셈같이 간단하고도 불완전하다. 정론직필만 정답으로 아는 언론 역시 이 불편한 진실에서 예외가 아니다.

1960년대 말 학계에서는 언론이 과연 연구대상으로 삼을 만한 지적기반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비판이 일었다. 세상일을 전달하는 과정만 있지 실체가 없다는 빈정거림을 들어야 했다. 뉴스 생산에 관한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정보를 어떻게 찾는지, 정보를 어떻게 평가하고 분석하는지, 정보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의사소통하는지에 대한 독자적인 논리가 없다는 말이다. 언론에 내재된 두 가지 룰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나는 사건이 있어야 뉴스를 생산한다는 수동성이다. 다른 하나는 해당 분야에 대해 지식을 갖게 되면 그쪽 논리를 전하게 되므로 기자는 비어 있어야 한다는 순수성이다. 언론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체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뉴스의 질-소비량 사이의 고민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탐사보도다. 뉴스 생산 방식의 과학화를 통해 정밀보도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회학자처럼 이론 가설 연구방법론 검증가능성을 동원하고자 했다. 질 높은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비어 있는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문제는 돈이다. 단순 전달자는 출입처 정보를 가공하는 능력만 갖추면 뉴스 생산에 큰 어려움이 없다. 탐사보도는 사람 시간 지면 등 돈이 필요한 모든 요소를 요구한다.

불행하게도 체계를 구축하려는 언론의 노력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합리적 무시’라는 이론이 있다. 언론이 좀 더 자세하게, 좀 더 질 높은 뉴스를 제공해도 유권자는 이를 더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급 뉴스의 시장수요가 크지 않고, 들인 비용만큼 값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생산비용이 낮은 연성뉴스는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 뉴스의 질과 소비량 사이에 교환관계가 형성된다. 한쪽을 택하면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고 다른 쪽을 택하면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언론은 정론직필처럼 완전한 논리가 아니라 어느 쪽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불완전한 논리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언론은 그 불편함의 균형을 지키면서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 불완전한 메커니즘에 매여 있는 언론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지 모른다. 언론의 시장경영은 점점 어려워진다. 작금의 경기악화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기업 주가 하락은 전부터 시작됐다. 워런 버핏은 이미 몇 년 전에 신문사 주식을 내다 팔라고 했다. 로버트 피카르드 같은 매체경제학자는 인터넷도 이 추세를 막지 못한다고 보았다. 인터넷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삼아 가치사슬을 확대하더라도 비용 구조의 경직성 때문에 신문은 결국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완전해도 타협 이끌어내야

규제완화를 골자로 한 언론관련법을 놓고 정치권은 디지털전략이라는 명분에서부터 언론자유의 명제까지 내걸면서 대치한다. 한쪽에서는 디지털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은 시장지배적 언론의 지배력 강화술책이라고 본다. 여야 모두 정치적 지향에 따라 자신을 지지하는 언론사를 끼고 있다. 여론몰이를 해줄 수 있는 언론사를 배후에 두고 있으니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을 위한다는 명분과 구호 속에 정작 언론의 논리는 얼마나 담겨 있는가. 질과 양의 교환관계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불완전함을 아는가. 여야 모두 언론의 이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불완전의 불편한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전히 사회를 지탱하는 골간이기 때문이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