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동호]대북정책, 앞으로 3년이 문제다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100년 후에도 북한이란 나라가 존재한다면 지금의 북한과는 매우 다른 나라일 것이다. 십중팔구, 전면적인 개방과 본격적인 개혁을 거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자리 잡힌 나라일 것이다. 전근대적인 왕조 체제와 역사적으로 비효율성이 입증된 사회주의 체제로는 21세기에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변화 과정에서는 핵과 인권 문제도 해결됐을 것이고 휴전협정도 평화협정으로 대체됐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성장을 거듭해 남한과의 소득 격차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손은 북한과 사이좋게 살고 있을 것이다. 100년 후의 북한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거의 동일한 체제를 갖고 있을 것이고 갈등과 대립 관계는 화해와 상생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남북한 간에는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고 경협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어서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분단은 여전하지만 걱정 없는 한반도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제대로 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이고 결국 대내외 환경에 적응 못해 100년 후에는 이미 붕괴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개방과 개혁을 선택했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선가는 남한에 통합됐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변화란 결국 남한과 유사한 체제로 변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힘들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하는 독자생존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우월한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 좀 더 나은 대안이기 때문이다. 혹은 변화과정에서 신체제와 구체제의 충돌이 붕괴를 야기해서 통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급속하면서도 혼란스러운 하드랜딩이냐 혹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소요된 소프트랜딩이냐의 차이일 뿐 북한은 사라졌고 통일한국만이 존재할 것이다.

北군부 태도는 불안감 표출

100년 후 학자에게 한반도는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일 것이다. 지구상 마지막까지 남았던 분단의 해소이자 냉전의 진정한 종식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통일과정도 독일보다 훨씬 길고 복잡해서 그만큼 다양한 연구주제를 제공할 것이다.

후대의 학자는 우선 북한의 소멸과정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북한 붕괴는 이미 1940년대 북한 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체제란 출발과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혹은 1960년대 주체와 자력갱생을 들고 나오던 시절을 붕괴의 시발점으로 평가하기도 할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주목할 시기는 지금부터 3년여의 기간일 것이다. 북한은 2012년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며 올해는 문패라도 달겠다고 선언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시장 없이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노동자의 대다수는 부업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라지만 국가도 계획도 현실에서는 사라졌다. 경제 시스템은 이미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환경도 쉽지 않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단호하고 직접적인(tough and direct) 대북정책은 ‘단호’에 방점이 있을 것이어서 오히려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보다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실수를 기억하는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부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치도 위태롭다. 김정일의 건강은 언제 다시 악화될지 모르고 후계 구도는 불투명하다. 내부적으로는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앞두고 심각한 갈등과 대결이 진행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후계자가 누가 되든 김일성, 김정일만큼의 카리스마가 없을 것임도 분명하다. 이미 통치 시스템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한 권력의 핵심인 군부도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 최근 북한 군부의 강경태도는 그런 불안감의 표출이다.

‘비핵·개방·3000’ 재점검 해봐야

당연히 후대의 학자는 남한의 대북정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북한 체제의 균열이 시작된 이 기간에 당사자인 남한 정부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했는가를 평가할 것이다. 방향은 맞더라도 ‘비핵·개방·3000’ 구상이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정책이었는지, ‘기다림’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는지 점수를 매길 것이다. 차근차근 문자 그대로 실용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간 중국의 통일 경험과도 비교할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분석할 것이다. 100년 전 이명박 정부의 실용은 무슨 뜻이었는지.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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