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대화가 필요해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어느 봄날, 무언가 심상찮은 소리가 나를 깨웠다. 소리의 진원지는 옆집,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한 정원이었다. 아침부터 뭐야, 투덜거리며 나가 보니 거대한 포클레인이 길고 흉측한 팔을 뻗어 담장 안의 나무를 들어내고 있는 거였다. 멀뚱하니 쳐다보는 내게 옆 빌라의 경비아저씨가 이랬다. “저 집 팔렸어요. 빌라 짓는대요, 5층짜리.”

세상에나, 5층이라니, 게다가 열 가구라니. 3층 건물의, 햇살이라고는 오전 한때 잠깐 스쳐갈 뿐인 1층에 살던 나는 애가 달았다. 탐문 끝에 나는 건축업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번쩍거리는 대형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업자는 징징거리는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참에 그 집도 헐고 같이 짓자. 헌 집 대신 멋진 새 집을 한 채씩 드리겠다.”

마당 있는 집을 찾아 이사한 지 고작 3년.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종일 어두컴컴한 거실, 내복을 입고 스웨터를 껴입고도 달달 떨며 지낸 겨울을 두 번 난 터였으므로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싶었다. 나는 즉시 2층과 3층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간이 누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2층, 세입자가 나가고 반 년째 비어 있던 3층의 주인을 설득하는 일이 뭐 그리 힘들겠는가라고 했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었을 뿐.

“아유, 이사를 어떻게 해. 난 못해.” 중견 탤런트인 2층 주인의 반응이었다. 그즈음 시청률 높은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그와는 통화조차 쉽지 않았다. 3층 주인과의 대화는 그보다 좀 더 어려웠다. “그런 뜨내기 업자를 뭘 믿고…”라고 한마디 한 후로는 끝이었다.

사모님→할매→마귀로 호칭 변해

혼자 일을 시작하겠다는 업자를 설득해서 어렵사리 세 가구의 주인이 만난 자리, 첫 만남은 상당히 점잖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장님, 교수님, 사모님으로 불러가면서 몇 평으로 지을지, 설계는 어찌할지, 기존 주인에게는 어떤 혜택을 줄지 등등에 대해 의논했다.

2차 만남, 업자가 설계도를 내밀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우리가 요구한 평수는 충족되었으나 집은 복층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갑갑해서 못산다, 이걸 집이라고 짓느냐”라는 힐난에 업자의 얼굴이 불그죽죽해졌다. 세 번째 만났을 때의 문제는 이사비용이었다. 그 돈으로 대체 어디 가서 2년을 살란 말이냐고 따지는 2층, 3층의 두 여자 앞에서 업자는 폭폭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을 무렵 3층 주인이 딴죽을 걸었다. 3층 위, 다락처럼 딸린 십여 평의 공간에 대한 보상을 따로 받아야겠다는 거였다.

모임이 거듭되면서 3층 주인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그 여자의 나에 대한 호칭도 교수님에서 아기 엄마로, 젊은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팬이라며 반색하던 2층 탤런트에 대한 호감도 싹 거두어졌다. 알고 보니 천하에 상종 못할 여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 여자에 대한 다른 이들의 호칭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갔다. 사모님에서 3층 주인으로, 3층 할매에서 다시 3층 마귀할멈으로.

그 사이 업자와 3층 주인은 육두문자를 섞은 싸움을 몇 차례 벌였고 흥분한 업자가 웃통을 벗어젖히는 바람에 말로만 듣던 용 문신을 목도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 남편의 항의 전화에 기어이 폭발한 업자는 조폭 수준의 언사를 퍼부었으며 마침내 둘은 경찰을 부르네, 고소를 하네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중간의 모든 사연을 시시콜콜, 휴대전화가 뜨끈해지고 배터리가 다할 때까지 일러주고 따지는 거였다. “그냥 조용히 있을걸.” 후회막급이었다. 집값이 떨어지든지, 세입자가 안 들어오든지, 물이 줄줄 새든지 죄다 무시하고 죽을 때까지 퍼질러 삽시다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람들 많아

그 후로도 거의 장편 분량의 우여곡절 끝에 집을 허물고 새집으로 들어온 지도 이미 몇 해가 지난 이 겨울, 이주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용산의 참사를 보며 다시 그때의 일을 생각한다. 우리들은, 우리의 사회는 왜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가르치지 못한 것일까.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입만 있고 귀라는 건 없는 듯 굴까. 목소리 크면, 과격하면, 힘으로 밀어붙이면 이긴다는 믿음이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누군들 처음부터 화염병을 들었겠는가. 누구라서 물대포와 곤봉을 들이대고 싶었겠는가.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 누구의 아들인데…. 대학에, 아니 고등학교 과정에 대화의 기술, 설득의 화법 같은 강좌를 개설해야만 하지 않을까.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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