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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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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자리를 파한 뒤 서울역에 가봤다. 숨진 노숙인들을 위해 추모행사를 한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눈발이 날리는 데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인지 추모행사가 끝나고 역 광장에는 드문드문 행인들만 잰걸음으로 오갔다.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리다가 올해 초 화염에 휩싸였던 지척의 숭례문을 보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는 지하도에서 10여 명의 노숙인을 봤다. 대부분 라면박스 위에 누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떨고 있었다. 홑이불이나마 덮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아름답고 늠름한 그 모습 그대로’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몇 걸음 가니 출입통제선이 나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위압적인 표지판 옆에 안내판이 댕그라니 서 있다.
‘연대=1398년(태조 7년)/소재지=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번지/이 문은 서울성곽의 정문이다. 또한 도성 남쪽에 있어 남대문이라고 한다….’ 통제선 밖에서 불탄 숭례문을 빙 둘러 가린 대형 패널을 한참 쳐다봤다.
아름다움과 늠름함과는 거리가 먼, 인공적이고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남대문 모사(模寫) 그래픽을 보면서 마음이 싸했다. 을씨년스러운 주변 풍경에 “610년을 견뎌온 남대문이 못난 후손들 때문에…” 하는 자괴감이 북받쳤다.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세로로 내걸었다는 숭례문의 현판. 그 현판이 불길에 휩싸여 떨어졌기 때문인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온 나라가 촛불의 바다에 휩싸였고, 그 촛불이 꺼지자 이내 경제대란이 나라를 덮쳤다.
큰스님의 신년법어에 등장한 ‘화택(火宅·불난 집)’이라는 단어가 솔깃하게 다가온다. 스님은 현세가 어려울수록 나누고 베풀며 살라고 했다. 소액 기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가.
기업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굴지의 대기업이 내걸 신년메시지의 화두 중 하나가 생존을 뜻하는 ‘살아남자’라고 한다. ‘우리는 끈기 있게 끝까지 견뎌낸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야고보서)’는 성경말씀도 있다.
청계천에서 어른 팔뚝만 한 메기를 본 것은 2년 전 여름 큰비 내린 직후였다. 인공폭포 바로 밑에 시커먼 메기가 배를 바닥에 깔고 누워있었다. 한강의 지류 어디에선가 먼 길을 헤엄쳐 와 힘이 빠진 듯 지쳐보였다.
청계천 하류에서 상류로 오는 데만 세찬 여울이 숱하게 있다. 그 험한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대장정을 마친 메기를 경이로운 눈길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기억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년 상반기에 벌어질 기업 도산과 실직 사태의 조짐에 미리부터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부처 고위직을 지낸 한 선배는 “6·25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때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고난과 시련이 우리 앞에 어른거린다. 그럴수록 기죽지 말고 역경에 당당하게 맞서자. 기업은 고통을 나누고, 정치권도 민생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도우며 이 어려운 때를 슬기롭게 넘기자.
숱한 여울을 거스르고 세찬 물살마저 이겨낸 강인한 청계천 메기를 내년 여름에 꼭 다시 보고 싶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