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직업으로서의 문화예술, 험난한 길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6분


문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21세기 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세계적인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2000년 펴낸 책에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선진국을 비롯한 10억 명 정도만 잘사는데, 공통점을 따져보니 다들 문화적으로 앞선 국가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이처럼 경제와 문화는 동반자 관계에 있으므로 나라가 풍요로워지려면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만 대 수출과 맞먹는 이윤을 남겨주는 문화산업의 놀라운 수익성도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문화가 메마른 도시생활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효과, 빈부격차 속에서 계층 간 갈등을 완충시켜 주는 역할에도 사람들은 눈을 돌리고 있다. 문화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비칠 만하다.

유망하지만 실망스러운 보상

이런 기대를 갖고 문화예술을 평생 직업으로 택하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에는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에 문화예술 전공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화예술 분야처럼 춥고 배고픈 동네가 없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직업 연극인들의 월평균 수입을 조사했더니 36만 원에 불과했다. 법정 최저임금 80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집안에 돈이 없으면 자녀에게 클래식 음악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A교향악단의 초임은 연봉 1600만 원에 그치고 있다.

신정아 사건으로 세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미술계의 큐레이터는 월 100만 원 안팎의 저임금 업종이다. 대표적인 문화산업이자 투자자금이 몰리는 영화계의 인력들도 밤샘 촬영을 밥 먹듯 하는 고강도 작업에도 불구하고 낮은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연극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한다.

이상한 것은 그래도 일만 시켜 달라는 젊은이들이 문화예술계에 줄을 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졸업자 과잉 탓이 크다. 해마다 대학 문을 나서는 음악 전공자는 6000명, 미술 4000명, 연극영화 1500명, 무용 1000명이다. 응용 분야까지 합치면 3만 명이 넘는다. 좁은 문화계가 소화할 수 없는 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졸업생들이야 어떻게 되든 몸집 늘리기에 매달려온 대학들이 얄밉기 짝이 없다.

인력이 넘치더라도 문화계의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전망이 뚜렷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선진국을 보면 비관적이다. 우리보다 여건이 훨씬 좋은 미국의 예술단체들조차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는 구조적인 데 있다. 예를 들어 음악공연을 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은 갈수록 증가하는 반면 입장료 수입은 제한되어 있다. 입장료를 크게 올리면 관객이 등을 돌린다. 기업체 후원을 끌어와야 하지만 쉽지 않다. 단원들의 임금을 낮추는 게 그나마 살아남는 방법이다.

물론 문화예술계에도 큰돈을 버는 스타들이 있으나 전체 규모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선천적인 재능과 끈기가 동시에 요구되는 문화계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은 다른 직업 분야에 비해 낮은 편이다. 노력만 갖고는 안 되는 곳이 문화예술계이다. 일부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뛰어드는 건 무모할 수 있다.

재능과 각오로 도전하기를

젊은이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시즌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세계적인 금융위기까지 겹쳐 고민이 더할 것이다. 지금보다는 미래에 인정받을 직업을 택해야 하겠지만 미래 예측은 원래 빗나가기 쉬운 법이다.

전반적인 추세로 보아 문화의 가치는 중요해질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누가 문화예술 분야를 택한다고 하면 과연 권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자주 나오면서 사회가 문화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문화계 역시 다른 분야만큼 각오와 독기를 갖고 도전해야 성공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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