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행복도시’ 브라질리아가 실패한 이유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반듯하게 정리된 도로를 따라 공공기관, 호텔, 은행 등이 질서 있게 배치된 브라질리아는 산뜻한 모습이었다.

18∼20일 이곳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순방취재단 일원으로 거리를 돌아볼 때 눈길을 끈 것은 자동차 흐름을 극대화하고 무질서한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기간도로를 중심으로 기능별로 건물들을 배치한 도시구조였다.

하지만 브라질의 한 공무원은 “브라질의 수도이지만 180만 명의 시민 가운데 도시 내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정치인, 고위 공무원, 은행 간부 등 고소득층뿐”이라고 말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은 외곽 위성도시에서 출퇴근한다는 얘기였다.

상파울루에서 이곳으로 출장을 온 한 한국 교민은 “브라질리아에 거주하는 공무원 가운데 옛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나 상업 교육 등이 발달한 상파울루에 집을 두고 혼자 와서 기거하는 ‘기러기’ 가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퇴근 후는 물론이고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도시가 텅 비어버린다는 것.

브라질리아가 건설된 것은 1960년. 브라질 산업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주셀리누 쿠비체크 당시 대통령이 집권 공약에 따라 “식민지 이후 고질적 문제였던 해안 중심의 경제에서 탈피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브라질 사람들은 “정부 건물이 완공된 후 공무원들의 입주를 예상한 부동산 투기가 일어 아파트 건설 예정지역의 땅값은 근로자들의 도시 진입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부자와 빈자가 어울리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한 자동차 흐름을 중시한 나머지 신호등과 인도를 적게 배치해 브라질 내 최대 교통사고 발생지역이 됐고, 모든 물자를 외부에서 육로로 조달하는 탓에 브라질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가 됐다. 수도 이전에 들어간 막대한 외채는 두고두고 경제 발전에 부담이 됐다.

한국에서도 수년간 많은 정치, 사회적 갈등을 치러가며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기왕 시작된 ‘행복도시’가 해당 지역에 진정 ‘행복’을 주는 도시가 되려면 브라질리아를 교훈 삼아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거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브라질리아에서

박성원 정치부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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