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경쟁력] ⑩김광수 경제연구소장의 ‘무욕(無慾)’

  • 입력 2008년 11월 15일 14시 55분


지난달 26일 경기 수원시 선경도서관에서 열린 지역포럼에서 김광수 경제연구소장이 열띤 강의를 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지난달 26일 경기 수원시 선경도서관에서 열린 지역포럼에서 김광수 경제연구소장이 열띤 강의를 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지난달 26일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선경도서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주말이었지만 160여명이 강의실 밖까지 가득 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장이 2년 전부터 지방을 순회하며 갖는 지역포럼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최근 경기 침체에 대한 어두운 전망 때문인지 가정주부부터 중소기업 사장님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설립된 지 이제 8년 된 민간연구소 '김광수 경제연구소'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잇단 '족집게 경제 예측' 덕분이다.

김광수 소장은 유료 회원들에게 제공되는 '경제 시평'을 통해 2002년, 2003년 이미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를 다뤘고, 2004년에는 미국 모기지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미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를 경고했다.

2007년 한국 증시가 코스피 2000을 돌파하고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에는 주가 하락을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한국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적인 부동산 버블 붕괴의 징조라고 말해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 영상취재 : 임광희 인턴 기자

● 정확한 경제 예측의 비법은 '무욕(無慾)'

같은 경제 지표와 통계 수치를 보고 내린 결론인데 그의 '족집게 예측'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김 소장을 만나자마자 '예언의 비법'부터 물었다.

"제가 특출난 것이 아니라 사심 없는 눈으로 자료를 보면 누구나 같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대기업 소속 연구소나 정부 지원 연구소 같이 특정 이해관계 안에 있다면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할까요?"

이어 그는 "경제학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증시폭락을 예고하지 못하고, 정부산하기관 연구원들이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결코 그들의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된 전망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광수 경제연구소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지식의 생산기관'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김 소장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마음을 비우고 도를 닦는 과정"이라 비유했다.

그는 14년 된 아벨라를 몰고 다닌다. 재테크에도 관심이 없어 주식 한 주도 없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적도 없다. 김소장은 "주식 하고 싶어도 돈이 없고 학원 보내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경제 행위를 하지 않는 고지식한 경제학자였다.

'탐욕'이 아니라 '무욕'을 얘기하는 경제학자가 정확하게 자본의 방향을 예측하다니… 얘기를 나눌수록 그가 궁금해졌다.

● IMF가 탄생시킨 김광수 경제연구소

1997년 12월 3일.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한 주요 정책당국자들에게 '김광수 경제연구소' 명의의 보고서가 배달된다. 김 소장은 외화 과다 차입, IMF 고금리 정책의 문제점, 환율관리 방안 등 정책 현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안 제시로 관료사회에서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10여년이 지난 2008년, 당시 위기가 다시 반복되는 것에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외환위기 당시 보고서를 보낸 이유는 관료들이 제대로 상황 인식을 하면 올바른 정책을 세우리라는 기대도 있어서였습니다. 40대 나이라 의협심도 있었지요. 그런데 10여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더군요."

그는 "한국의 경제 위기는 잘못된 정책으로 심화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상황에서 단지 몇몇 건설사와 땅 부자들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고 반짝 경기를 부추기는 정책은 위기를 더욱 부풀릴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다.

"부동산 등 자산가치 폭락이 비극이 아닙니다. 비극은 사람가치도 동반 폭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굴러가려면 토지와 임금이 싸지면서 기업들이 손실을 줄이려고 할 것이고 결국 가계가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그는 외환위기를 거쳐 왔음에도 우리가 위기를 극복할 자생적인 힘을 미처 쌓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이 가진 재산은 사람과 지식인데 이를 차곡차곡 기초부터 쌓을 수 있었던 지난 10년 간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욕심이 부른 재앙입니다. 이제야 뒤돌아보고 수정하고 하니… 사람이란 참 어리석죠."

우리가 배운 경제학 교과서들은 개인의 탐욕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지, 죄악이 아니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은 경제학을 잘못 배워왔다"고 단언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란 단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닙니다. 바로 연대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뜻이죠."

사회구성원들이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게임과도 같은 경쟁을 하면 할수록 상대의 행위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증가한다. 반대로 사회 구성원들이 공익을 위해 사익을 양보할 수 있다는 신뢰가 쌓이면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이것이 그가 강조하는 '시장경제의 역설'이다.

● "연구소 자리 잡기까지 죽기 살기로 버텼다"

김 소장은 30년 전 광주 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하고 처음 서울 구경을 했다.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7남매 사이에서 자라난 그도 가난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의상실은 기성복이 대량 생산되면서 문을 닫았고 이후 식당을 열었지만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부모로부터 "공부 잘 하라는 지청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저는 평준화 1세대예요. 공고에서 갑자기 인문고로 급조된 고등학교에 다녔으니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 했어요. 평준화는 당시 초등학생이 밤샘 공부하고 과외 받고 할 정도로 입시열풍이 지나쳐서 나온 특단의 대책이었습니다. 평준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지만 당시 학생들 참 불쌍했어요."

입영을 늦추려 진학한 대학원에서 오히려 학문의 재미를 느껴 유학까지 가게 됐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은 순전히 장학금 때문이었다. 도쿄대에서 박사 과정을 다니며 일본 경제의 탄탄한 기초에 감탄했고 다시금 한국 경제를 곱씹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최고 연구소인 노무라 종합 연구소를 다니다 뛰쳐나와 개인 연구소를 차리게 된 것은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결정한 일이다.

"주변에서 고생길이 열렸다고 걱정들 많이 했습니다. 당시 재정경제부 국장이던 권오규 전 부총리도 앞장서 말렸죠."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죽기 살기로 버텼다"고 했다. 쉽게 돈을 벌수도 있었지만 보고서를 팔거나 연구 용역만으로 연구소를 유지했다. 지금도 강의료를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방송 출연이나 기업체 강의는 사양한다.

현재 연회비 300만원인 '경제보고서(매달 제공)'와 연회비 20만원인 '경제시평(매주 2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경제시평'은 현재 유료 회원수가 11월 현재 1600명을 넘어섰다.

● 한국의 '씽크탱크'가 되고 싶다

정직과 도덕, '사심 없음'의 가치를 강조하는 김 소장이 욕심을 내는 것이 단 하나 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를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제시할 수 있는 '싱크탱크'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 이메일로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경제시평'과 매주 열리는 지역포럼을 통해 일반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경제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를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를 알던 모르던 간에 믿을 수 있는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제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다, 주가가 떨어진다 하는 것은 누구 망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선택한다면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죠. 건전한 시장경제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위기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서민들을 위해 경제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경제 공동체'를 꿈꾸는 김 소장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설한 인터넷 카페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cafe.daum.net/kseriforum)'을 알음알음 찾아온 회원이 현재 3만 명에 육박한다. 욕심도 없고 융통성도 없는 이 학자가 앞으론 어떤 길을 만들게 될까.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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