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묵]세계가 손잡아야 모두 산다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1929년 미국에서 주가 대폭락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주가 대폭락이 왜 그토록 길고 깊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졌는지, 또 어떤 정책으로 인해 대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기돼 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는 이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석학이다. 그는 금융위기가 어떻게 전염되고 실물부문에 어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또 실물부문의 침체가 어떻게 금융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야기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전통적 방법-낡은 도그마 효과없어

미국 금융당국이 좀 더 신속하게 대처했으면 지금처럼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 있었기에 이만큼이나마 대응할 수 있었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연방준비제도의 관할로 보지 않는 투자은행과 보험회사에까지 직접 자금을 투입한 것은 버냉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주요 은행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선제적으로 투입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발표하면서 지금의 위기는 전통적(conventional)인 방법으로는 대처가 불가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도그마(outdated dogma)에 사로잡혀서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 정부가 그토록 파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단초도 결국은 버냉키가 막후에서 주도한 전례가 없는 조치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1929년에 시작된 금융위기가 그토록 길고 깊은 경기침체로 이어져 대공황이란 이름까지 붙게 된 핵심 원인이 각국이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는 과정에서 결국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은 데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금융위기로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각국은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수입 억제, 수출 촉진 정책을 경쟁적으로 취했다. 수입관세율을 경쟁적으로 올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정책은 세계 무역을 마비시키고 결국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대공황 시대에 비해 훨씬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금융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만 살겠다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죽이게 된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정부는 금융기관이 겪는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포괄적인 대책을 신속하게 시행해야 한다. 전통적인 정책수단에만 의존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도그마에 사로잡혀 실기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

내수 진작하고 위기국 지원 검토를

이와 함께 금융위기가 실물부문으로 전파되고 다시 금융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한 획기적인 경기부양책을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무서운 것은 신용경색으로 인해 실물부문으로 파급되는 영향이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의 방향도 다른 나라를 궁지로 내모는 수출 촉진이 아니라 내수 촉진에 지향점을 두어야 한다.

현재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리고 있고 내달에는 G20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런 국제회의에서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일방적으로 지원을 요청하거나 우리 경제는 튼튼하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의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적극적인 내수 진작책을 통해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응분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견지를 분명히 천명하고 다른 나라에도 그런 정책을 촉구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 외화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면 국제적으로 지원한다는 대국적인 관점도 설파해야 한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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