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기업특성 맞춰 ‘R&D메커니즘’ 만들어야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학자 중 한 명인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기고를 통해 ‘연구개발(R&D) 메커니즘 구축’을 제안했습니다. 기술 혁신으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구비 확대 외에도 독특한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 교수의 주장은 국가와 기업의 R&D 담당자들에게 많은 통찰을 줍니다. DBR 20호(11월 1일자)에 실린 조 교수의 기고문을 요약합니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신성장 동력 육성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22개 핵심 산업에 민관 협력으로 총 99조 원이 투자돼 88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고 한다. 성장에 목이 마른 기업과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과연 투자만으로 신성장 동력이 확보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3위인 한국은 경제력에 비해 R&D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비는 3.47%로 이스라엘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다. 그러나 R&D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R&D 비용은 낭비되거나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지나치게 돈이 많을 경우 연구자가 나태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투자비 확충 외에도 다른 요인이 필요하다. 바로 R&D에 대한 경영자의 열정 및 전문성과 R&D 메커니즘이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한국 기업은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조선·철강 업종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는 열정과 경륜을 갖춘 경영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자 및 반도체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황창규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 남용 LG전자 부회장, 백우현 LG전자 기술총괄 사장, 우의제 전 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김종갑 하이닉스 대표이사 등이 대표적이다. 또 조선 업종에서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민계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철강에는 박태준 초대 포스코 회장부터 현 이구택 회장까지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술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했다. 특히 파이넥스 공법 탄생의 주역으로 꼽히는 강창오 사장 시절에는 대표이사가 연구소장을 겸임할 정도로 연구소 위상이 높았다.

기업 내의 R&D 메커니즘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삼성에서는 신상필벌의 인사평가 제도를 확립한 뒤 우수한 인력들을 모아서 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신제품을 개발하는 R&D메커니즘을 구축했다. LG는 철저한 고객 중심 조직 및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선도적 제품을 개발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하이닉스는 소수 주력 품목에 특화해 제한된 자원을 집중하는 R&D 메커니즘을 기초로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

조선 3사와 포스코는 국내 유수 대학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다양한 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가 갖고 있는 회사-대학-연구소 간의 삼각 편대는 우리나라 산학연 연계의 대표적인 R&D 메커니즘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생산효율 및 원가경쟁력 개선과 관련한 신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포항공대는 기초연구와 인재 공급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연료전지 등 차세대 기반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각 기업이 가진 R&D 메커니즘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자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제한된 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메커니즘은 경영자가 바뀌더라도 이와 관계없이 R&D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와 기업은 대규모 R&D 투자를 하기 전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기업의 메커니즘은 단기간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CEO가 확고부동한 비전을 세우고 온 구성원이 이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가운데 형성된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기업의 경영자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R&D 예산을 늘리는 동시에 자신에게 적절한 R&D 메커니즘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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