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지방분권화 다시 생각한다

  • 입력 2008년 10월 16일 02시 59분


칼럼을 오래 적다 보니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일종의 ‘필화’인가. 5년 전이다.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12대 국정과제’ 중에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란 과제만이 그래도 기대를 걸 만하다고 나는 논평한 일이 있다. 물론 지방분권화는 노 정권이 비로소 제기한 과제는 아니다. 나도 이미 지난 세기말 새로운 세기를 맞기 위해 조직한 ‘문화 비전 2000’ 위원회에서 1년여의 논의 끝에 마련한 보고서에 이 과제를 제기했다.

통일신라 후 한반도는 천여 년 동안 수도 일극(一極)을 향한 중앙집중, 중앙집권화의 역사로 일관해왔다. 그 흐름은 광복 후의 한국현대사에서 더욱 심화, 악화됐다. 모든 것의 수도권 집중으로 사람도 차도 운신하기조차 어렵게 된 것이 오늘의 서울이다. 시간도 우리 편은 아니다. 앞으로 분단의 장벽이 헐린다면 대거 남하할 북녘 동포들이 어디로 몰려들 것인가. 그렇기에 “지방분권화란 21세기 한국의 밀레니엄 과제요, 한국역사의 정언(定言)명령”이라고 나는 적었다.

이런 뜻을 이 칼럼에 쓴 얼마 후 오랜만에 Q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칼럼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감이니 그 내용을 대전의 연수회에 내려와 강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강권에 못 이겨 수락했더니 차를 보내왔다. 대학교수의 차로는 너무 사치스러운 듯해 기사에게 물어보니 “Q 교수님이 장관급 위원장이십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수도이전 지지자로 찍힌 ‘필화’

강연이 끝나 뜰에 나가 보니 거창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수도 이전을 위한 무슨 연수회라 적혀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았다. ‘필화’는 얼마 후 시작됐다. 알고 보니 ‘장관급 친구’는 수도이전추진위원회의 수장이었던 모양―그래서 논쟁에 휘말리면 곧잘 최 아무개도 수도 이전 지지자라고 했다는 소문이다. 괘씸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언젠가는 해명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지방분권화에 대한 소신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소신에도 변함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오원철 수석이 당시 수도 이전 구상을 마무리할 때쯤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보자는 모임에 불려간 일이 있다. 고 박충훈 이한빈 선생 그리고 이홍구 김진현 제씨 등 5, 6명이 모인 것으로 기억된다. 분위기는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나도 당시 분단 독일의 ‘전초 도시’인 서베를린의 경제적 문화적 퇴락 현상을 체험해온 사람으로 휴전선에 가까운 서울이 정부 남하 후 급격한 퇴락을 맞게 될 걸 염려해서 부정적 입장을 개진했다.

그렇기에 노무현 정부가 ‘지방분권화’의 과제를 들고 나왔을 때 나는 한 번도 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는 말을 한 일이 없다. 다만 ‘지방분권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방안으로 평소 생각하던 ‘학교정책’을 제안했을 뿐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자꾸 서울로 몰려드는 것일까. 왜 삶의 터전을 굳이 옮기려 하는 것일까. 두 가지 동기 때문이다. 첫째, 더 나은 수입을 위해서요, 둘째, 특히 한국인의 경우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다.

수도권의 공장 신설을 제한해 보려는 조치는 이미 뭇 반대에 부딪쳐 백기를 든 듯싶다. 그렇대서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수도권으로만 몰려서 서울이 머지않아 제3세계 징후군인 인구 2000만 명의 공룡도시가 돼도 수수방관만 할 것인가. 그런 비대화가 수도권 주민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가.

경제의 집중을 막을 수 없다면 교육의 집중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를 위해 수도권 전역의 고교 평준화는 계속 묶고 모든 지방에선 자치단체장 재량에 따라 평준화를 풀어준다. 특히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도 지방도시에만 설립을 허용한다.

교육의 집중만이라도 막아야

그럴 경우 이 땅에는 어떤 사설학원, 어떤 외국 고교보다 좋은 지방의 명문 고교가 족출(簇出)할 것이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지방의 여러 명문교에선 매년 100명 이상이 서울대에 진학하곤 했다. 그런 학교들이 지방에 있다면 왜 조기 유학을 가고, 왜 집값 비싼 강남으로 이사 가겠는가.

대학은 포항 울산 등 지방도시에 명문이 자리 잡고 있다. 고등학교도 서울이 아니라 한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하이델베르크나 튀빙겐 같은 작은 지방도시에 명문이 자리 잡을 수 있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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