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실종된 네티켓 찾습니다

  • 입력 2008년 10월 7일 03시 00분


중국 당(唐)나라 때 공직자 등용의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오늘날에도 유효해 보인다. 신은 용모와 풍채를, 언은 말솜씨를, 서는 글씨를, 판은 판단력을 말한다. 신언서판은 별개로 작용하기보다는 서로 상응하는 측면이 많다. 생래적 용모 못지않게 살아가면서 자기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삶의 자국은 용모와 풍채에 투영되기 마련이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판단력도 향상된다. 말과 글 속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녹아들어 있다. 인격과 품위는 탁마되고 정제된 말과 글로부터 우러나온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고결하고 정확한 의사표현은 중요한 생활덕목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은 곧 표현의 자유의 발전사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속박으로 귀결된다. 절대군주제를 타파한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에도 언론의 자유는 절제의 한계를 넘어섰다. 결국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주창한 ‘사상의 자유시장’보다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도화했다.

우리 헌법도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약칭 언론중재법)에서는 반론보도청구권과 더불어 정정보도청구권까지 보장한다.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뿐 아니라 인터넷신문도 언론중재의 대상이다. 언론중재는 언론보도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에 대응해 신속하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피해구제에 효과적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보편화에 따라 이제 정보는 법적인 틀에 포섭되는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유통되지는 않는다. 누리꾼(네티즌)은 각자가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의 주체다. 스스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블로그를 통해서 정보시장에 참여한다. 포털사이트에는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아무런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등재된다. 하지만 잘못 입력된 정보를 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인터넷의 특성상 확산 속도는 매우 빠르고 피해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켓은 실종되고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한 지 오래다. 이제 충동적이고 말초신경적인 인터넷 공간을 정화할 때다. 황색언론(옐로 저널리즘)도 일상 속에 파고들고 있다. 자유의 과잉은 결국 자유의 유폐로 귀결된다. 내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듯이 상대방의 자유와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 인간을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일시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한 사회적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작동하는 정보는 대부분 정보통신망을 통해서 유통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과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정보통신망법)은 사이버 명예훼손과 사이버 스토킹을 규제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사후약방문 격이라 실효성도 매우 미흡하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인 만큼 그 역기능도 광범하다. 사이버 공간에 숨어서 인격살인에 가까운 모욕적 인신공격을 일삼는 언행을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첫째, 인터넷실명제 강화는 불가피하다. 권리 행사에는 책임이 뒤따라야만 한다. 둘째, 악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댓글 삭제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대신 댓글 게시자의 이의신청을 제도화해서 법익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사이버모욕죄의 도입 여부는 기존 법제와의 견련성과 구성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자율적으로 제고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사회감시 기능은 살리고 악성 댓글은 사라지게 하자. 굳이 악플은 아니더라도 땅에 떨어진 인터넷 언어의 품위도 복원해야 한다. 인터넷 강국의 참모습은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사회의 품격으로부터 비롯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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