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학교정보 공개가 두려운 사람들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2002년 시도 교육위원 선거에서는 전교조가 추천한 후보 35명 가운데 24명이 대거 당선됐다. 서울시 교육위원은 전체 15명 가운데 7명이 전교조 출신이었고 교육위원회 의장까지 배출했다.

6월 첫 직선(直選)으로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전교조에 대한 일정한 지지가 뚜렷이 확인됐다. 공정택 당선자가 40.0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전교조 지원을 받은 주경복 후보는 거의 대등한 38.31%를 득표했다. 전교조와 함께 이른바 진보 진영을 대표한다는 조직인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13.1%, 올해 총선에서 5.7%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선전이었다.

‘착한 전교조’라는 미신

전교조는 교원노조법에 따라 교사들이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조직한 이익단체다. 전교조 가입 교사는 전체 교원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이끌어내는 것은 전교조에 대한 착시(錯視)현상에 기인한다.

전교조를 노조 이전에 도덕적 우위를 지닌 교원단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기존 교육에 대한 불신에 따른 반사작용이다. ‘오로지 우리 아이들만을 생각하겠다’고 내세우는 전교조의 이미지 전략이 성공한 측면도 있다. 전교조의 평등 노선에 대한 지지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갈수록 집단이익에 집착하는 행태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전교조는 국민의 82%가 찬성하는 교원평가제에 반대하고 있다. 조합원 이익에 반하는 교원평가제를 거부하는 것은 전교조가 노조이므로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최근 학교정보 공개에 대한 전교조의 반대도 같은 맥락이다.

전교조는 학업성취도, 취업률 같은 학교정보를 공개하면 학교 서열화 등 부작용을 낳는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전교조를 노조라고 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교사들에게 학교정보 공개는 무척 피곤한 일이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의 교사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학교 사정이 속속들이 드러나 교사들끼리 경쟁해야 하는 풍토로 바뀌는 게 좋을 리 없다. 대학 진학 실적과 직결되는 학교별 수능시험 성적까지 공개되면 엄청난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교사들은 정보 공개에 반대할 처지가 못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학부모가 낸 학비로 고용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부모가 정보를 원하면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특히 전교조는 ‘투명하고 열린 학교운영’을 강조해 왔다. 정보를 공개하는 학교가 ‘열린 학교’다. 자신들과 직결된 문제가 나오면 말이 달라지는 전교조의 이중성은 그들이 노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전교조의 사용자 측에 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상하게도 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에 대해서는 전교조와 의견이 일치한다. 전국적인 학력 격차는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능 성적 공개를 통해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날 경우 교육당국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치부를 숨기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학부모가 명분과 속셈 구별해야

소위 진보세력은 수능시험 성적이 공개되면 고교별 학력 격차가 드러나기 때문에 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대학들이 차별적인 고교등급제를 할 마음을 먹겠는가. 지난 시절의 잘못된 편견에 입각해 다수의 차별의식을 부추기는 전술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발목 잡기로 일관하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망가진 공교육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한국 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자는 말은 전부터 나왔으나 현실은 여전히 교육당국과 교원노조 등 공급자 손 안에 있다. 교육 수요자들이 ‘착한 전교조’의 미신에서 벗어나 주어진 권리를 행사해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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