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래]‘촛불’로 계속 재미 보려다 그 불에 델 수도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사람은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개인적인 성취나 자녀의 장성하는 모습을 볼 때 그렇고, 사회적으로 국가가 발전하여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올 경우도 그렇다.

건국 60년을 맞는 금년 8·15는 광복 이후 한국만의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보람과 재미를 온 국민이 함께 맛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는 다른 ‘재미’가 있어 한번 재미를 보면 다른 일에도 연이어 누리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는 모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대선 당시 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에서 “재미 좀 보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재미’는 탄핵반대 시위와 함께 그 이전에 발생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반미 촛불시위의 반향(反響)으로 효과가 배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 사안에서 재미를 가져다주는 요인은 그럴듯한 절대선(絶對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으로 대개 진정성이나 진위와는 무관하다.

수도 이전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그 공약이 노무현 후보에게 대통령 당선이라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촛불시위의 ‘재미’를 본격적으로 부활시킨 것은 석 달여에 걸쳐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다. 전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먹는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면서 확산된 선동적 시위는 지난날 촛불시위의 재미에 집착하여 촉발됐다.

이 와중에 촛불시위의 ‘재미’가 이른바 ‘독도괴담’의 불씨를 지핀 적도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사건이 발생하자, G8(선진 7개국+러시아) 확대정상회의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이 ‘독도를 일본에 팔아 넘겼다’는 괴담으로 인터넷에 유포됐다.

상식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 독도괴담은 촛불시위의 ‘재미’에 집착한 세력에 선동적 시위의 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어느 정치학자가 말한 ‘현실의 일식현상(eclipse of reality)’처럼 근거 없는 광우병 사태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서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8·15를 계기로 수입 쇠고기 반대집회가 100회를 넘어 다시 도진 모습을 보면 투쟁동력에 대한 운동권의 집착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촛불시위에 집착하는 별종의 ‘재미’는 ‘한로축괴(韓(逐塊)’라는 고사(故事)를 연상시킨다. 한국(韓國)이라는 사람이 기르던 개가 흙덩어리를 쫓아간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선가(禪家)의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고사는 최근 계속 ‘재미’를 보고자 하는 이들이 야기하는 시위를 대하는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준다.

흙덩어리를 던지면 곧장 물고 돌아오는 귀여운 개에게 ‘재미’를 본 한국이란 사람은 지나가는 사자에게도 흙덩어리를 던져 같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사자는 흙덩어리를 던진 자신에게 달려들어 당초 기대했던 ‘재미’는커녕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됐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축괴(逐塊)’의 방종적인 남발처럼 터무니없이 이어지는 시위가 우리 사회의 체제부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거의 ‘재미’에 집착한 이들이 벌이는 시위는 반정부 시위를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한 대한민국의 국체를 흔드는 문제로 연결된다.

일부 좌파단체는 건국 60년의 의미를 부정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고사의 주인공과 우리의 국호(國號)가 공교롭게도 같다는 점에서 ‘한로축괴’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겨볼 일이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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