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철]청도의 값비싼 교훈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9분


6·4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이 압도적이었던 대선과 총선이 불과 수개월 전이었음을 감안하면 여당으로부터의 민심 이반이 너무도 극적이다.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당면한 과제를 확인시킨 계기이기도 하다. 특히 국민의 올바른 참정권 행사가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여건에 휘둘리기 쉬운 참정권

우선 짧은 시간에 이뤄진 극적인 민심의 변화는 국민이 제대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복합적인 의사를 한 표 속에 몽땅 쏟아 넣어야 하는 선거에서 인물 투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 투표가 주요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연속된 선거에서 정당 지지가 돌변한다는 것은 광우병 파동과 같은 새로운 현안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의 앞선 선택에 문제가 없지 않다는 추측을 낳는다.

만일 그렇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책임을 절감해야 할 당사자의 목록에는 정당이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도 포함돼야 한다. 자신들을 대신하여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을 결정할 대표를 선택하는데 공약의 합리성이나 그 실현 가능성을 보장해 줄 정치적 실적은 제쳐두고,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사적 감정에 휘둘려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는가?

선거의 목적과 무관한 비합리적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투표에 임하게 될 때 국민은 심판자의 지위에서 동원과 매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국정은 로비에 강한 이익집단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고 정작 대다수 국민을 위한 공익은 소외된다.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 이런 점들을 눈여겨보고서 심판해야 할 국민들은 정작 심판의 날만 되면 연줄에 현혹되어 판단을 그르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주권자를 주인으로 만드는 신성한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로 격하시키는 주객전도의 과정일 뿐이다.

지난 4년간 매년 군수를 뽑기 위한 재·보선을 치렀던 경북 청도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청도의 선거파동은 문중, 동창회, 소지역주의가 활개 치는 선거는 매표와 향응 같은 민주주의의 적들에게 신성한 참정권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혈세를 주민복리가 아닌 선거비용으로 낭비하는 과정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행히 이번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의 적발 사례가 없었던 것은 몇 사람의 목숨과 1500여 명의 군민을 전과자로 양산한 값진 대가라고나 할까.

국민이 스스로의 책임을 성찰해야 할 것은 주권자로서의 위상을 손상시키는 심판의 자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은 다양한 선거에서 무엇을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지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는 총선이나 대선과는 달리 지방정부에 대한 심판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의 의미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정심판론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주권자로서의 책임 성찰해야

현재 지역구도에 지배된 지방정치는 일당독재 체제로 고착되고 있다. 재·보선의 결과 일부 지역에서 반대당의 지위가 강화되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한 당이 자치단체장과 의회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주민복리와 관련된 사안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지방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색한 정치체제가 형성된 것에 대해 우리 국민은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이제 또 한 차례의 선거가 끝났지만 또 다른 선거가 계속해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선거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반성 못지않게 국민 스스로가 정치의식을 향상시키고 참정권을 올바로 행사하는 것이 중요함을 각성할 때이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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