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중소병원들 “인력 다 빼가면 어찌 살라고”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9분


대형 대학병원들의 신증축, 리모델링, 분원 설립 등을 통한 세 불리기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서울병원이 올해 초 암센터(650병상)를 열었고 서울아산병원이 신관(772병상)을 개관했다. 지방 분원 설립도 활발하다. 수년 내에 경기지역에는 서울대병원(경기 오산), 세브란스 병원(경기 용인), 경희대병원(경기 수원) 등 500∼1000병상의 대학병원 분원 6, 7곳이 들어선다.

이러다 보니 지역 거점 중소병원들이 휘청거리고 인력이동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권영욱 차기 중소병원협의회 회장은 “대학병원이 잇따라 신증축하면서 의료인력, 특히 간호 인력을 대거 빼가고 있다”며 “서비스는 고사하고 진료를 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이 올해 말 1000병상 규모의 양산부산대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150여 중소병원이 이 병원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부산대병원이 간호 인력 320여 명을 뽑으면서 중소병원의 경력자 50∼60명이 갑자기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수도권 병원도 신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호사가 아닌 대체 인력을 쓰는 병원도 늘고 있다. 이주한 경기 안성성모병원 원장은 “간호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응급구조학과 출신 소방공무원 지망자를 채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협은 급기야 29일 대형 대학병원의 인력 빼가기를 막기 위해 병원을 신증설할 경우 국내 의료서비스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하는 ‘의료영향평가제’를 도입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중소병원들의 운영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병원컨설팅 회사는 중소병원의 40%가 몰락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특별히 잘하는 분야도 없고 경쟁력도 없는 중소병원에서 더 좋은 여건의 큰 병원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의료업계에 약육강식의 논리만 횡행해서는 안 된다. 시민이 자주 찾는 중소병원에 간호사가 없으면 안전사고나 감염사고, 의료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소병원들도 남 탓만 할 일은 아니지만 이들이 제안한 의료영향평가제가 의료기관의 균형발전과 서비스 향상에 어떤 역할을 할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김현지 교육생활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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