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긍정과 희망의 대안교과서

  • 입력 2008년 4월 20일 20시 59분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책 ‘신국부론’(1986)에서 1960년대 저주받은 한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국토는 작고 인구는 많다. 자원은 없다. 국민의 80%는 문맹이고 외국인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식민착취, 국토양분, 내란으로 200만 명이 죽었다. 예산의 3분의 1을 국방비로 쓴다. 1961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이 나라가 끝났다고 했다. 74개 후진국 명단에서 1인당 국민소득 60위였던 나라가 25년 뒤 9위가 되었으니 무슨 요술약이라도 먹었는가?’

짧은 기간에 번영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서양인의 눈에 마법으로 비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두고 수치와 죄의 역사라고 폄훼하는 내부의 시각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오욕의 역사라 생각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초중고교에서, 대학 강단에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국 근현대사는 반민중, 빈민족, 반민주 역사로 매도당했다.

“대한제국은 망하지 말았어야 했고 분단은 되지 말았어야 했으며 5·16군사정변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니,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과거사 청산이었고 개혁이었다.”(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

이 부정의 역사관은 결국 ‘아버지 죽이기’로 나타났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을 발의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의 아버지를 친일파라고 욕했다가 자기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경찰로 일한 전력이 밝혀졌다. 남의 아버지를 욕하다가 자기 아버지를 욕보이는 불효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현재가 만족스러울 리 없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47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나라에 불만이 많다’고 답한 국민 중 한국인이 세계 3위였다. 내전 중인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다음이었다.

소득은 선진국에 접근하고 있지만 ‘마음’은 준내전국에 가까운 괴리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사회적 혼란의 뿌리라고 본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괴리를 바로잡는 정신혁명이 필요하다. 영국병을 고친 대처리즘의 핵심도 결국 ‘정신 혁명’이었다. 그녀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는 저절로 좋아진다”고 했다.

‘남 탓, 사회 탓, 국가 탓을 하며 길들여진 나태 무책임 방종을 몰아내고 책임감과 인내로 자력 성취하려는 개인들이 잘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 이건 이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의 문제다.

교과서포럼이 최근 펴낸 새 대안 교과서에 대해 좌파적 역사관에 맞선 우파적 시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과거를 부정할 것인가, 긍정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개화기 이래 수많은 선각자들의 노력의 결실이며 한국인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강조한 역사관이다. 조상에 대한 ‘감사’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는 한국인들의 병든 마음과 혼란에 빠진 지성을 긍정의 힘으로 치유해 보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