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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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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력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였다. 김 씨는 미국 유수의 경영대학원(MBA)인 와튼스쿨에서 성적이 뛰어나 입학 1년 만에 세계적 금융회사인 모건스탠리에 들어갔다고 했다.
수사팀 관계자가 “와튼스쿨이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모건스탠리 본사까지는 평균 2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평소 출퇴근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모건스탠리가 필라델피아에 개인 사무실을 열어 줬고 2년 근무하는 동안 230만 달러를 받았다”고 답했다.
수사팀은 모건스탠리 한국지사를 통해 사실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근무 기간은 1년도 안 됐고, 급여도 총 6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김 씨는 수사팀이 이를 제시하며 추궁하자 “왜 한국지사를 통해 알아보느냐.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눈을 부라렸다.
수사팀이 “그렇다면 변호인이나 누나인 에리카 김을 통해 자료를 받아오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시간이 없다”고 둘러댔다.
이 얘기를 전한 수사팀 관계자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미국에서 한 진술과 검찰, 특검에서 한 진술이 모두 달랐다. 진술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BBK 특검팀은 21일 이 대통령 관련 의혹들에 대해 모두 무혐의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검찰 수사와 같은 결론이다. 그러나 공세에 나섰던 구여권 세력은 아직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특검 수사 직후 검찰이 공세를 주도한 정봉주 의원 등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자 통합민주당은 즉각 “정치 보복을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구여권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수세 국면을 뒤집기 위해 ‘김경준 카드’에 집착했다. 2002년 대선 때 주효했던 ‘한 방의 추억’을 떠올리며 여기에 매달렸다.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 무기는 대부분 김 씨 측의 일방적인 주장과 자료였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정치 논리와 공세만 난무했지, 그런 주장과 자료의 진위를 가려 보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12월 한 구여권 인사는 “세계에서 들어가기 힘들다는 와튼스쿨에서 제대로 공부한 대한민국 엘리트요, 성공한 이민 2세”라고 김 씨를 치켜세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구여권에서 ‘병풍(兵風)’의 주역 김대업 씨를 ‘의인(義人)’으로 떠받들던 6년 전과 겹쳐 쓴웃음을 짓게 한다.
BBK 특검 관계자는 수사 발표 때 “(김경준 씨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했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특검을 또 할 수는 없지 않나. 어정쩡하게 결론을 내면 혼란만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에서 대선 때의 고소 고발 사건을 취하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거푸 확인된 김 씨의 잘못과 불법을 먼저 인정하는 공감대부터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묶인 것을 푸는 화합의 첫걸음이자 지름길이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수사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