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프로기사 목진석이 반한 소설가 성석제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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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초 친구의 권유로 그의 소설을 읽고 나는 데굴데굴 굴렀다. ‘조동관 약전’이었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 표현이 실감 날 정도로 유쾌하게 낄낄거렸다. 그러나 이 웃음은 헛웃음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눈이 찡그려졌다. 마음 한구석이 저린 느낌에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했다. 성석제 소설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 후 나는 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 봤다. 책을 달고 살며 속독하는 나는 그의 소설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경쾌하고 빠른 문체, 유머와 해학이 가득 담긴 표현이 내 마음속에 꽂혔다.》

그 수에 휘말려 웃다가 눈물 적시니… 감동 상상력의 高手

나는 바둑 외길을 걷는 프로기사가 됐다. 주변의 일을 둘러볼 여유는 전혀 없었다. 바둑 외에 다른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바둑에 대한 불경죄에 속했다. 어릴 때는 그게 좋았다. 바둑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공부해도 지루한 줄 몰랐다. 나름대로 바둑 천재 소리를 듣는 것도 기분 좋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최종학력을 ‘초등학교 졸’로 남긴 것도 외길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프로기사가 된 뒤에도 질주는 계속됐다. ‘괴동’이란 별명을 들으며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 주자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외길을 가면서 내가 놓쳤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중국어를 배워 중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전업 가수와 함께 음반 취입도 하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프로기사 중에서 나는 외도를 많이 한 기사로 취급받는다. 그런 외도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거라고 주위에서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내 외도는 어디까지나 바둑의 길 내에서였다.

나는 성석제의 소설에서 외길 밖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소설집 ‘조동관 약전’에 나오는 단편 ‘고수’는 성석제의 유일한 바둑 소설이다. 프로기사가 되려던 주인공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내기바둑꾼으로 전락한다. 결국 바둑계를 떠나 친구와 조그만 공장을 하며 살아간다. 후회? 주인공에게 그런 건 없어 보인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인 잡스러운 내기바둑꾼의 세계는 외길 외의 다른 길을 내게 보여 준다. 짧고도 짧은 단편 속에 일상의 편린을 끌어내는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도 내 갈증을 풀어 준다.

성석제의 소설은 바둑으로 치면 부드럽고 빠른 행마를 보는 듯하다. 전성기 시절의 조훈현 9단의 바둑 같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부드럽게 날아올라 급소를 콕콕 찍어 댄다. 상대(독자)를 한 방에 눕히진 않는다. 대신 상대(독자)는 조금씩 쌓인 충격에 마침내 녹아 버린다. 내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소설 속에서 가끔 바둑의 본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단편 ‘즐겁게 춤을 추다’를 보면 ‘낭떠러지에서 잡고 있던 가지를 놓을 수 있을 때 그게 장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가 고전에서 따온 구절인 듯한데 이 구절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바둑을 두다 보면 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버려야 할 순간이 여러 번 다가온다. 도저히 버릴 수 없다고 믿었던 돌을 버려야 하는 결정은 정말 어렵기만 하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큰 승부에서 마음의 풍랑을 잠재우고 손을 놓는 순간 더 큰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걸 얘기하는 듯하다.

성석제의 소설에선 사람과 사람을 맺어 주는 상상력의 날개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황만근, 당숙, 형, 과외교사, 내기바둑꾼, K 씨 등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다른 이의 관계는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의 상상력을 접할 때마다 바둑이 소설과 같이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돌을 내려놓는 건 내 의지지만 바둑판 위에 놓인 순간부터 그 돌은 자신만의 생명을 갖는다. 요석이 어느덧 사석이 되고 쓸데없는 가일수가 결정적인 축머리가 된다.

돌 하나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돌과 돌이 관계를 맺고 있을 때 하나의 돌의 가치가 드러난다. 부분적으론 묘수지만 전체적으론 악수(惡手)가 되고 돌의 모양은 우형(愚形·돌이 뭉쳐 효율적이지 못한 모양)인데 반상의 급소가 된다. 돌 하나하나가 갖는 존재의 색깔을 관계 속에서 명확히 밝힐 때 거대한 만다라를 이룬다.

석제의 소설에는 변방에서 소외되고 쓸모없는 인간 군상이 많이 등장한다. 한 명 한 명 떼어 놓고 보면 실패한 인생이요, 구제 불능으로 버림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관계를 맺어 놓고 보면 이들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의 소설에선 인간(바둑돌)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다.

돌과 돌의 관계를 제대로 맺어 주기 위해선 단순한 수읽기로는 부족하다. 프로기사라면 수십 수의 외길 수순을 읽어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관계의 본질을 읽어 내는 눈이 필요하다. 관계를 제대로 맺어 주기 위해선 남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성석제 소설의 전도사가 됐다.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성석제의 것을 고른다. 최근에도 생일을 맞은 바둑TV 진행자에게 ‘소풍’을 선물했다.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소설에서 느껴지는 그의 바둑은 유쾌하고 즐거울 것 같다. 또 굉장히 셀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전투적인 아마 5단이라고 한다. 한번 만나서 쾌활한 그의 바둑을 느껴 보고 싶다.

■“목 9단의 바둑은 드라마 같아요”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프로기사가 저를 꼽았다고 하니 영광이죠.”

성석제(47) 씨는 목진석(27·사진) 9단이 ‘내 마음속의 별’로 자신을 지목한 것에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목 9단을 개인적으론 모르지만 바둑으로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목 9단의 바둑은 드라마가 느껴지는 바둑입니다. 쉬운 길로 가지 않고 끊임없이 어려운 길을 탐구하는 스타일이죠. 그의 바둑을 보면 굉장히 공들여 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 판 이기는 것 이상의 뭔가를 얻어 내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성 씨는 중학교 시절 50%의 시간을 바둑에 쏟아 부었다고 할 정도로 바둑 마니아. 그때 이미 아마 5단의 실력을 갖췄다. 그는 바둑계 인사와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 잠시 동양그룹에 재직했던 그는 그룹 차원에서 주최한 세계기전 동양증권배의 실무를 맡아 바둑계에 얼굴을 알렸다.

22일 밤에도 그는 노승일 박해진 홍상희 등 바둑 평론가들과 막걸리와 맥주를 기울이며 정담을 나눴다. 그와 여러 차례 바둑을 둔 한 바둑 평론가는 “무식한 싸움 바둑으로 내기 바둑에 강하다”고 평했다.

그는 목 9단이 그의 소설의 상상력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소설에서 답습과 반복을 가장 경계합니다. ‘정석을 외운 뒤 잊어버려라’는 바둑 격언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집착해선 안 된다는 거죠. 소설과 바둑은 상상력을 극대화해야 좋은 소설, 좋은 바둑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둑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바둑을 소재로 한 소설은 너무 적지 않으냐고 묻자 “전에 한 번 구상해 둔 게 있는데 내년 봄에 세상 밖으로 풀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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