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병일]한국의 스마트파워는 어디에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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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은 지금 지도력 공방이 뜨겁다. 9·11테러 이후 6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어 온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미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시선도 그리 살갑지 않다. 동서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국으로 전 세계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었던 미국의 지도력은 실종된 듯하다. 국제회의에서 만나는 미국 학자들도 ‘어떡하다가 미국이 이 지경으로까지 내몰리게 되었는가’라고 자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내년 미국 대선의 당선자는 실추된 미국의 세계 지도력을 복원해야 하는 역사적인 소명과 만나게 된다.

소프트파워-하드파워 조화 필수

이와 관련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미국의 지도자급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스마트파워 위원회’가 발표한 국가전략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실추된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파워’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나라가 자발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흡인력을 지닌 ‘소프트파워’와 조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프트파워를 강화해 하드파워와의 균형을 맞추는 ‘스마트파워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한국은 스마트파워 전략을 갖고 있는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세계 10대 통상 대국으로서의 한국은 어느 정도의 하드파워를 갖고 있다. 한류 열풍은 한국의 소프트파워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최근 개도국의 빈곤 퇴치, 질병 퇴치, 교육기회 확대를 목표로 하는 국제공적원조(ODA) 증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올릴 수 있어서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적절하게 융합되는 스마트파워 전략을 구사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벽을 넘어야 한다.

하나는 세계화에 대한 이중 잣대이고, 또 하나는 도를 넘어선 배타적 민족주의이다. 우리는 한국 자본이 외국에 진출해 이익을 실현하는 데 열광하고 동남아를 휩쓴 한류에 열광하면서, 외국자본이 고용을 창출하고 경쟁을 유발해 경제의 체질을 단련하고 한국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은 평가절하한다.

제품과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집단적 인식과는 달리, 자신의 지갑을 여는 소비자로서 한국민의 선택은 경제논리에 꽤나 충실하다. 증대하는 여행수지 적자, 조기교육과 명품 열풍은 그런 개인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민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은 이율배반적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2%가 이미 외국인이고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외국인의 국내 이주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도 한국민은 순혈주의에 집착한다. 금년 여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에 대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인종과 다른 국가 출신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한 점을 상기해 보라.

세계화 이중잣대 먼저 버려야

세계화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확산력보다는 흡인력에 의해 좌우된다. 외국의 자본 기업 기술 인력을 유치해 국내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이 전개되는 국가가 강국이다. 순혈주의는 배타적 경제민족주의로 연결된다.

한국 자본은 점점 한국을 탈출하는데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는커녕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마저 몰아내려는 집단 히스테리는 한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뿐이다. 우리 것에만 집착하는 순혈주의의 장벽을 한국이 극복해야만 한국은 스마트한 스마트파워 국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다. 40일이 채 남지 않은 한국 대선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논의는 실종됐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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