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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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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자로 초청된 필자는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양대 보수주의 원칙을 공고히 하고 대북(對北)정책과 이념 문제에서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 원칙론자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살리고 공산 체제를 멸망으로 이끄는 대성공을 이뤘지만 뒤이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쟁 승리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올리는 등 보수주의 원칙에서 이탈해 재선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동아대 교수를 지낸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중도층이란 ‘중원(中原)’을 공략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보수 이념에 집착하다가는 중도 유권자를 상실해서 또다시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국의 보수는 ‘유신(維新)’이란 원죄(原罪)를 지고 있어 반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캠프의 대변인으로서 활약한 박 의원은 이 후보의 경선 승리에 기여했다.
이명박 후보 측 보수층 홀대
하지만 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두고 한나라당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했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 후보 측을 압박하니 그렇게 치열한 경선을 왜 치렀는지 알 수 없다. 이 전 총재의 행보를 두고 정당 정치를 훼손한 반칙(反則) 행위라고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할 것은 이명박 후보의 ‘중도 정치론’이 이런 사태를 초래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한나라당식(式)의 ‘중도 정치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전체 유권자의 30%로 추정되는 전통적 보수층이 한나라당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려면 고정 지지세력인 보수표를 기반으로 삼은 후에 중도 성향의 부동표를 획득해야 한다. 중도 성향 표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고정 보수표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측근들은 한나라당의 기반인 보수층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폄훼하기까지 했다. 어떤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주최한 국민행동본부를 ‘나치 친위대’에 비유했다. 이 후보 주변 사람들의 이 같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전통 보수세력의 표심은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갈 곳을 못 찾고 떠돌았다.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지율이 20%대로 나온 현상은 한나라당의 이런 자충수와도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이 보수 정체성에 집착하면 부동표를 잃어버려 선거에서 지고 만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금년 대선에 그런 이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좌파 정권 10년에 대해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압도적 다수가 된 상황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힘들이지 않고 부동표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굴러 온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고정표를 잃어버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거에서 고정표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확실히 패배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성공한 비결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 공화당원’이라고 불리는 원칙론적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작은 정부와 감세(減稅)를 주장했고 소련을 사라져야 할 ‘악(惡)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빈한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부유층과 대중의 마음을 함께 붙잡을 수 있었다. 고결한 도덕성과 탁월한 설득력을 갖춘 그를 미 국민은 열렬하게 지지했다.
자기 식구 챙기는 게 우선
민주당원이지만 레이건에 의해 유엔 주재 대사로 발탁된 진 커크패트릭은 “민주당원이 레이건을 지지하는 데는 잘못된 점이 없다”고 했다. 레이건의 성공에는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부르는, 레이건을 따듯하게 지지한 많은 민주당원이 있었다. 자기 식구도 챙기지 못하는 한나라당을 다시 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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