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아직도 이런 규제가 버젓이…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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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민간을 계속 지도하고 계몽해야 한다는 과거 규제 관행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정부에 등록된 규제 5025건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7일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대중 정부 첫해 8000여 개에 이르던 ‘등록 규제’는 2002년 말 5000여 건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말 다시 8000여 건으로 늘었다. 지금은 5025건이지만 이는 분류 기준을 바꿔 외형상 줄어든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입만 열면 규제 개혁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쳐 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이 최근 한국에선 ‘성역(聖域)’이 돼 버린 수도권 규제, 대기업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 등 민간 활동을 제한하는 1500여 건의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해외로 떠났던 일본 기업들이 속속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매년 크게 증가하는 등 규제 철폐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한경연 연구 결과를 보면 수도권 개발 억제정책 등 현 정부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규제는 둘째 치고, 초등학생도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황당한 규제’가 곳곳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보 18일자 A2면 참조
시각장애인이 노란색 지팡이 짚고다니면 ‘위법’?

대표적으로 ‘중졸 미만 자녀의 자비(自費) 해외 유학 금지’ 규제는 과거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매년 수만 명의 초등학생이 해외 유학이나 연수를 떠나니, 엄격히 따지면 이들은 모두 범법자인 셈이다.

투기 방지 차원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70세 이전 묘지 매매 금지 규정도 어처구니없다. 이 규정대로라면 자식들은 부모가 70세 이전에 사망한 경우 장례를 치르기 전에 먼저 묘지부터 마련하러 다녀야 할 것 같다. 시각장애인이 빨간색이나 노란색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안 된다는 규정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현실성도 없는 이런 규제가 지금도 버젓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연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규제가 곧 ‘밥그릇’이라는 공무원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어쩌면 규제를 만들기에만 바쁜 정부가 이런 황당한 규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던 것은 아닐까.

조용우 경제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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