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조무제, 울산과기대 초대 총장의 도전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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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내에서 승용차로 국도 24호선을 타고 언양 쪽으로 20여 분쯤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곧바로 논밭이다. 구불구불한 콘크리트 농로와 야트막한 야산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가막못’이라는 작은 연못과 10여 채의 농가가 흩어져 있는 아늑한 분지와 만난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가을볕에 알곡이 여물어 가는 평범한 농촌이다. 그러나 산자락에 세워진 안내판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일대가 2009년 3월에 개교하는 ‘국립대학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가 들어설 땅이다.

또 하나의 국립대는 성공할 것인가

울산과기대는 내달 1일 이곳에서 기공식을 연다. 공사비만 2500억 원. 주변 100만 m²(약 30만 평)는 점차 웅장한 최첨단 캠퍼스로 바뀌어 갈 것이다. 110만 울산시민이 “16개 시도 중 국립대가 없는 곳은 울산뿐”이라며 10년간 그토록 갈망했던 ‘국립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울산과기대가 순풍에 돛을 단 배는 아니다. 유력한 국립대마저 통폐합에 내몰리는 이 시기에 새로 국립대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해 있다. 확실한 대답은 ‘시간’만이 할 수 있다. 현재로선 지난달에 취임한 조무제(63) 총장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울산은 우리나라 공업의 발상지이자 산업의 중심지다. 이런 곳에 산학협력의 모델이 될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엔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도 부족하다.” 첨단학문 육성, 산학협력 강화,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이공계 특성화 대학을 지향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의 신설 대학에 눈길이나 줄 것인가. 조 총장은 “입학 정원은 1000명이지만 500명만 뽑는 한이 있어도 일정 수준이 안 되는 학생은 뽑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어떻게 가르쳐, 어떤 학생을 배출할 것인지도 학교 평판을 좌우한다. 조 총장은 교수와 학생의 20% 정도는 유능한 외국인교수와 아시아권 유학생으로 충원하고, 거의 모든 강좌를 영어로 하겠다고 밝혔다. ‘2+2+2’라는 ‘신(新)산학협력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학부 전반기 2년과 후반기 2년에 한 번씩 산업체 인턴교육을 의무화하고, 대학원 2년 심화과정도 이론과 실무에 두루 밝도록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설계도다.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초대 총장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조 총장은 얼마 전까지 국립 경상대 총장을 지내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두 곳의 국립대 총장을 잇달아 맡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최고의 대학’을 만들려는 시도는 조 총장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도전의 길이다.

험한 관문은 또 있다. 엄청난 규모가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빈손으론 절대로 명문대를 못 만드는 시대다. 조 총장은 울산시가 매년 100억 원씩 15년간 지원하기로 약속한 종자돈과 지역 산업체의 지원, 교수들이 따오는 연구비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현금’은 없고 모두가 ‘어음’뿐이다.

총장 리더십과 지역 협조에 성패 달려

낳았으면 길러야 한다. 앞으로 20년, 울산과기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지역 자치단체, 지역 산업체, 지역 주민이 삼위일체가 되어 울산과기대의 젖줄이 돼 줘야 한다. 개교에만 만족한다면 울산과기대가 또 하나의 평범한 국립대가 되더라도 비난할 수 없다. 울산과기대 건립 예정지를 둘러보며 문득 옛말이 떠올랐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복숭아와 살구꽃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밑에 저절로 샛길이 생긴다). ‘가막못’까지 인재들이 몰려들어 ‘반연대로’가 생길 것인가.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럼에도 울산과기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포스텍(포항공대)이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같은 대학을 하나쯤 더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기분 좋은 상상 때문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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