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靑 앞의 檢’ 왜 그리 무뎌지는지

  • 입력 2007년 9월 18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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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게이트’와 ‘정윤재 게이트’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대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당 경선은 국민의 관심 밖이다. 여론에 떠밀려 엉거주춤 시작한 검찰 수사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17일부터 신정아 게이트 수사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까지 투입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에 특별수사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부터 ‘신정아 게이트’에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이름이 등장했지만 검찰은 10여 일이 지난 이달 4일에야 신정아 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서부지검이 수사에 착수한 지 44일째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e메일 내용을 분석한 결과 신 씨가 변 전 실장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은 지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두 달 전 미국으로 도피할 때 증거 인멸을 노린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의 ABC를 잊어버렸는지 결정적 물증을 방치했던 셈이다.

검찰의 한 핵심 관계자는 “신 씨 자택을 제때 압수수색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에 대한 대응도 깔끔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뇌물이 오간 건설업자 김상진 씨와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의 만남을 주선한 당사자가 정 전 비서관임을 알면서도 검찰은 파고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상식적으로 세무조사 당하는 업자를 부산국세청장에게 소개해 주는 자리인데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모를 수 있겠느냐”며 “수사팀은 당시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서면조사라도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두 사건의 공통분모는 핵심 관련자가 권부의 유력 인사라는 점이다. 정부의 주요 정책을 주물렀던 변 전 실장은 노 대통령에게서 “이런 공무원도 있구나”라며 극찬을 받았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 현 정부에서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핵심 실세’였다. 부산파 386인 정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과 정치 역정을 함께한 사실상 ‘동업자’ 중 한 명이다.

이런 연유로 검찰이 아리송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인사권을 쥔 청와대에 대한 두려움, 즉 ‘청와대포비아(phobia·공포증)’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법조계 주변에선 서울동부지검이 지난해 이재순 당시 대통령사정비서관이 연루된 제이유 사기 사건을 수사했을 때 곤욕을 치렀던 전례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노 대통령은 올 3월 국무회의에서 제이유 사건 내부감찰 결과를 보고받은 뒤 검찰을 성토했다. “(검찰이) 정권과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수사하라…이 정도로 끝내자. ‘괘씸죄’로 다루지는 않겠다.” 당시 검찰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검찰 고위 간부는 회고했다.

한 현직 검사는 “청와대 인사들을 수사할 경우(잘못하면 동티가 남)와 눈 질끈 감고 안 할 경우(만사가 편할 때가 많음)를 상정해 따져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지레 눌리지 말고 정도(正道)를 걸을 때 제자리에 설 수 있다. 그래야 대형 사건 때마다 감초처럼 튀어나오는 정치권의 특검 공세도 수그러들지 않겠는가.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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