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 9단은 방금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포식한 사자처럼 배가 부르다. 그는 사방에 벌어 놓은 실리를 보며 흡족한 웃음을 짓는다.
이제 좌변만 적당히 삭감하면 승리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늘 ‘적당히’가 문제의 시초다. 흑 75는 느긋한 마음에서 나온 느슨한 수. 이런 모양에서 흔히 ‘적당히’ 삭감할 때 애용하는 수이긴 하지만 지금은 과감하고 능동적인 좌변 삭감이 필요했다.
참고 1도가 알기 쉬우면서도 백집을 철저히 파괴하는 수법이다. 백이 80으로 넘어가자 흑과 백의 실리 차이가 확 줄어든다. 게다가 좌변 흑은 한 집도 없이 중앙에 떠도는 신세가 됐다.
흑 91로 허겁지겁 달아나는데 백 92가 옆구리를 쥐어박는 수. 덜컥 참고 2도 흑 1로 받다간 백 2, 4로 백이 흑을 관통해 버린다.
박 9단도 흑 93의 맥을 찾아냈지만 이 과정에서 백은 조금씩 실리를 챙기고 있다. 역시 흑은 미생. 형세는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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