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다시 보는 한국역사’ 연재 마친 신용하 석좌교수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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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창간 특집으로 10회에 걸쳐 연재된 ‘다시 보는 한국역사’에서 한국고대사의 지평을 유라시아대륙까지 확장시킨 신용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그는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풀려면 역사학에 인류학과 언어학을 접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동아일보 창간 특집으로 10회에 걸쳐 연재된 ‘다시 보는 한국역사’에서 한국고대사의 지평을 유라시아대륙까지 확장시킨 신용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그는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풀려면 역사학에 인류학과 언어학을 접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문헌고증학에 치중한 현재 한국역사학으로는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기원전 7세기 이전 동아시아 역사를 풀어낼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아날 학파처럼 우리도 이제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 사회학을 접목해야 비로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창간특집 ‘다시 보는 한국역사’ 10회 연재를 마친 신용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는 “가슴이 후련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통렬히 반박하는 한편 한국고대사의 지평을 유라시아대륙까지 확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만족감 때문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 학계의 비판이 너무 점잖은 측면이 있어 이번에 아주 작정하고 썼어요. 고조선과 고중국의 민족적 계보가 어떻게 다른지를 국민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기 위해 역사학 인류학 언어학을 총동원했고 그 대강만 소개됐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총리의 담화도 일부러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의 동북공정 비판이 좀 더 대중적이었다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의 비판은 좀 더 학술적이었다.

“일본 야마토(大和) 왕국이 한반도 변진 12국 중 하나였던 변진미오야마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분국으로 ‘야마족의 땅’이라거나, 신공황후의 원형인 히미코의 어원이 ‘부여계 왕족의 여성’이라는 뜻임을 밝혀낸 것은 학계에도 발표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신용하 교수
△1937년 제주생 △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4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65∼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1970년 하버드대 역사학 및 극동어 박사 과정 수료 △1975년 서울대 문학박사(사회학) △1975∼2003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현재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한성대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신 교수는 거대한 중국 대 협소한 한반도로 고착화된 한국의 역사 인식의 커다란 전환이 고대사 연구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음도 보여 줬다. 그는 멀리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으로 진출한 고대 아시아 유목민족의 기원을 추적해 그들이 고대 한국인과 유사한 제천의식을 행했고 단군조선과 유사한 고대왕국에 대한 신화를 공유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발칸이란 지명이 고대 한민족이 제천의식을 행한 산을 뜻하는 ‘밝안산, 밝산, 백산(白山)’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신 교수는 이런 연구를 통해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는 기원전 2세기 전까지 동아시아 고대사가 크게 고조선사와 고중국사로 양분된다는 점을 뚜렷이 했다.

“고조선을 기원으로 삼는 민족·국가는 한반도와 만주 몽골 터키 일본,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발칸 반도, 심지어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처럼 발트 해 지역까지 퍼져 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현지화하면서 그 기원에 대한 계승의식이 약해진 반면 한국은 그 계승의식이 가장 뚜렷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하나의 고리로 엮는 역할은 한국 학자들의 몫이어야 합니다.”

이번 연재에 대해 학계의 검증을 거친 내용을 엄선할 필요가 있지 않았느냐는 일부 비판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원칙대로라면 학계에 논문을 쓰고 신문에 보도하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우리 학계에선 다른 사람의 논문을 잘 읽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주장이나 해석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학계에 자극도 주고 더욱 많은 독자에게 다가서기 위해 신문을 택했습니다.”

신 교수는 특히 문헌고증학에만 치우친 우리 역사학계의 방법론도 아쉬워했다.

“우리 역사학계를 흔히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나누지만 둘 다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에 매몰돼 있다는 점에선 같은 전통에 서 있습니다. 강단사학이 기원전 7세기 이후 중국 문헌에 의존한다면 재야사학은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같은 후대에 발견된 문헌기록에 치우쳐 있습니다.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풀려면 이런 문헌기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 교수는 이를 위해 역사학의 좁은 시야를 인류학과 언어학의 넓은 시야로 보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학과 언어학은 비교연구방법론을 통해 여러 민족의 역사에서 공통점을 추출해 냅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 토템이 만주 한반도 일본 중앙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나 이들 지역 민족의 기원에 대한 공통된 의식과 언어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역사학에 접목해야 합니다.”

그는 “역사학이 시간에 대한 종적 연구라면 인류학과 언어학은 공간에 대한 횡적 연구”라며 “이 둘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이 공간감각과 역사감각을 함께 지닌 사회학의 몫”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역사학의 새로운 장을 연 아날 학파가 사회사에서 출발했다는 지적과 함께. 그러나 신 교수는 이들 전공의 융합이 이뤄진다면 개별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며 재미있는 말을 들려줬다.

“군대 계급에 비유하면 영어로 소령을 뜻하는 메이저(major)가 자신의 병과에 대한 전문가란 뜻에서 유래했다면 대령을 뜻하는 커늘(colonel)은 한 개의 병과를 넘어선 넓은 대열을 총괄한다는 뜻에서 왔습니다. 그 위의 장군을 뜻하는 제너럴(general)은 모든 병과를 아우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학자들도 언제까지 소령에만 머물 수는 없지 않겠어요. 대령도 되고 별도 달아야죠.”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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