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초등생 피살]코앞에 범인 두고도…40일간 헤맨 경찰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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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른 없는 곳에서 다시 피어나렴”실종 40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양지승 양이 다니던 제주 서귀포시 서귀북초등학교에서 25일 양 양을 추모하는 방송 조회가 열렸다. 양 양의 책상 위에 주인 잃은 공책 필통 리코더가 조화와 함께 놓였다. 서귀포=연합뉴스
“나쁜 어른 없는 곳에서 다시 피어나렴”
실종 40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양지승 양이 다니던 제주 서귀포시 서귀북초등학교에서 25일 양 양을 추모하는 방송 조회가 열렸다. 양 양의 책상 위에 주인 잃은 공책 필통 리코더가 조화와 함께 놓였다. 서귀포=연합뉴스
양지승(9) 양 유괴 살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경찰이 초동수사와 수색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의 전과자인 송모(48) 씨가 양 양의 집 근처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이를 몰랐다. 또 시체 발견 지점도 양 양 집에서 불과 120m 떨어진 곳이었지만 수차례의 수색에서 양 양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조사 결과 송 씨는 양 양을 유괴한 뒤 바로 성추행했고 유괴 2시간 만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의 기본을 놓친 경찰=서귀포경찰서는 양 양의 실종을 접수한 이튿날인 3월 17일 중앙치안센터에 수사대책본부를 설치 했다. 이후 공개수사 방침을 밝히고 양 양의 행방을 찾았다.

실종이나 유괴 사건의 경우 주변 불량배와 동종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가 기본. 또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성폭력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전과 23범으로 유력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송 씨를 초기에 확인하지 못했다. 송 씨는 1992년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으로 청송감호소에 수감된 전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송 씨가 사는 가건물은 양 양의 집에서 직선거리로 120m 떨어진 감귤과수원에 있었다. 2004년 이사 와 현재 가건물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막노동을 했다.

경찰의 초기 수색 과정도 엉성했다.

양 양의 시체는 발견 당시 폐TV와 폐타이어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색대원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실종 초기에 시신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부근 감귤과수원은 농사용 가건물 등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집중 수색 대상이었다. 폐가전제품 등을 그대로 지나친 것은 형식적인 수색작업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경찰은 “시체 발견 지점 근처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냄새가 많이 난 데다 양 양의 시체가 비닐로 2중으로 포장돼 수색견들이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유괴 2시간 만에 살해=경찰에 따르면 송 씨는 사건 당일인 3월 16일 오후 5시경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소주방에서 혼자 술을 마신 뒤 집으로 가던 중 혼자 걸어가는 양 양을 발견했다.

그는 양 양에게 접근해 “글을 모르니 대신 글을 써 달라”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과수원 내 가건물로 양 양을 유인한 뒤 곧바로 성추행했다.

송 씨는 오후 7시경 양 양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송 씨는 범행 후 양 양의 시신을 놔둔 채 자신이 사는 1.5평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오전 5시경 시신을 마대에 싼 뒤 비닐로 2중 포장해 쓰레기 더미에 숨겨둔 채 태연하게 생활했다.

경찰은 또 양 양의 속내의가 뒤집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성추행 뒤 강제로 옷을 입힌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송 씨의 방 침대에서도 양 양의 머리끈 1점을 발견했다.

경찰은 25일 오후 3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송 씨는 갈색 바지, 잠바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현장에서 태연하게 사건을 재연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옆집 주민 김모(76) 씨는 “등잔 밑이 어두웠다”면서 “뒷집에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 사는 줄 몰랐다”며 혀를 찼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불안에 떠는 부모들…“내 아이도 혹시”▼

양지승(9) 양이 실종 40일 만에 살해된 채 발견되고 지난달 인천 연수구 초등학생 박모(8) 군이 유괴된 후 살해되는 등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자녀 안전에 관심이 커지면서 위치추적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자가 급증하고 호신술을 배우는 아이가 증가하는 등 사회 전반에 유괴 공포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내 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안심=KTF는 지난해 10월 자녀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안심 서비스 ‘아이서치서비스’를 출시했다.

2월 당시 가입자가 4만1540명이던 것이 인천 유괴사건이 터진 뒤 지난달 19일에는 5만1475명으로 1개월 새 거의 1만 명이 증가했다.

특히 인천 유괴사건 보도 직후인 지난달 17일과 18일에는 가입자가 각각 388명, 323명으로 1일 평균 가입자 260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SK텔레콤도 만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루 8번 자녀의 위치 정보를 부모에게 전달하는 ‘자녀안심 서비스’의 3월 신규 가입자가 4000여 명으로 전달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호신술 학원 초등학생으로 북적=체력 증진이나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췄던 무도학원도 최근에는 호신술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아예 호신술 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무도학원도 있다.

학원들은 유괴범이나 성범죄자가 팔이나 옷을 잡아당기거나 뒤에서 끌어안았을 때 등 긴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호신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태권도 학원에는 지난달 인천 유괴사건이 있고 나서 학원생이 2배나 늘었다. ▽우리 아이 우리가 지켜야=초등학교에서는 유괴 예방이나 유괴를 당했을 때 대처 요령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한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는 저학년 학생에게 유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등하교를 부모와 함께 하길 권장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압구정초등학교는 ‘어머니 폴리스’ 소속의 학부모들이 매일 하교 시간인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30분 사이에 학교 주변을 순찰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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