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제네바 사단(師團)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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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칼.’ 외교통상부에서는 워싱턴의 주미(駐美)대사관 경제과와 제네바의 한국대표부 두 곳을 다 거친 직업외교관들을 이렇게 부른다. 워싱턴에서 미국을 상대로 양자(兩者)협상을 배우고,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제네바에서 다자(多者)협상의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통상 전문가의 반열에 오른다는 뜻이다. ‘쌍권총’이라고 부를 법도 한데 굳이 ‘쌍칼’이라고 한 이유는? 우선은 ‘쌍권총’이 F학점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고, 다음으로 국익을 위해 협상하는 사람은 검객(劍客)처럼 매섭고 민첩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킨 우리 협상 팀에도 ‘쌍칼’이 대거 포진했다. 조태열 통상교섭조정관, 안명수(제네바 대표부 참사관) 정부조달 분과장, 최경림(제네바 대표부 참사관) 투자 분과장, 민동석(제네바 대표부 1등 서기관) 농업협상대표 등이 그들이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 미국 통상법 ‘슈퍼 301조’를 둘러싼 한미 통상마찰 때부터 활약해 온 조 조정관은 워싱턴과 제네바에서 각각 두 번씩이나 근무한 베테랑이다.

▷제네바 대표부는 다자외교의 산 교육장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어서 고난도의 ‘회의외교(Conference Diplomacy)’를 해 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제네바에서 웬만한 국제회의쯤은 거뜬히 주재할 수 있어야 실력 있는 외교관으로 평가받는다. 언어는 기본이고 국제 감각과 리더십, 친화력이 필수다.

▷한미 FTA 다음 차례인 유럽연합(EU) 중국과의 협상에도 제네바 사단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전문가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U는 물론 중국도 간단한 상대가 아니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전문 외교관 양성에 온 힘을 쏟아 왔다. 한중(韓中) 외교대전에서도 밀리지 않도록 제네바 사단을 잘 관리하고, 또 길러 내야 한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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