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리벤지 이직(移職)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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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일상생활에 많이 쓰는 일본인들은 복수를 뜻하는 ‘리벤지’라는 말도 자주 입에 올린다. 한국에서는 복수가 ‘앙갚음’ ‘원수 갚음’ 같은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에선 ‘리벤지’의 뉘앙스가 중립적인 편이다. 일본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샐러리맨들이 ‘하향(下向) 취업’했던 회사를 떠나 조건이 더 나은 회사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를 ‘리벤지 이직(移職)’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 직장인들이 기를 펴는 일본이 부럽다. 직원이 떠난 회사들이야 난감하겠지만 경제 사회 전반의 활력이 증대될 것이다. 더 의욕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소에 인재가 배치되면 개인 기업 국가를 통틀어 생산성도 높아진다. 개인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 경제회복에 가속도가 붙는 선(善)순환이 일어난다.

▷사실 직장인의 힘으로 이룬 리벤지라기보다는 호황의 결실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일본 전체의 리벤지가 진행 중인 셈이다. 경제가 국민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시장경제 마인드에 입각한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 강행되는 정책들은 선의와 보편적 접근 방식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권 잡은 사람들의 ‘복수’에 가깝다. 부동산 보유세 폭탄만 해도 그렇다. 세금을 몇 배씩 올리면서 비명 지르는 납세자들을 향해 ‘이사 가면 되지’라고 약을 올리고, 온 국민에게 좀 더 가진 사람을 증오하도록 부추긴다.

▷권력의 잘잘못을 시비하는 주요 신문에는 정부 광고를 싣지 않는 ‘광고 탄압’도 앙갚음 성격의 복수다. 독자가 많은 신문이 당연히 광고효과도 높다. 이런 신문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광고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이는 세금을 잘못 쓰는 일이다. ‘비판 신문’에 대한 이런 복수는 곧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일본처럼 ‘리벤지 이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자리가 많이 생길 정상(正常)의 정책을 펴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최우선으로 할 일이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이니….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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