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창용]외환위기 10년, 금융시장의 성적표

  • 입력 2007년 3월 1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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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경험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이 갖는 특별한 의미로 인해 학계마다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에 대해 논의가 한창이다. 금융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 변화에 대해 질문이 자주 들어온다. 그런데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개가 외환위기의 영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기업금융을 통해 산업발전에 기여해야 할 금융시장이 소비자금융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 못마땅한 이유 중 하나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 증가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기름을 뿌리기도 했다. 금융회사와 감독기관 모두 위험관리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자했지만 대우 사태, 카드채 대란 등 금융시장 교란도 수차례 반복되었다. 주요 은행들을 외국인투자가들이 소유하면서 단기차익과 수수료 수익만 추구하다 보니 기업금융에는 인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판에 수긍할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외환위기가 고착된 금융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비로소 차입금 중 원금을 갚아야 할 때도 있다는 원칙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자만 갚으면 됐지 원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한 은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역시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기에 이제는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은행에 가던 관행에서 벗어나 금융기관을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기업대출은 줄어들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은행 문턱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선진 금융기법 도입 자본시장 발전

외환위기 이후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 다양한 선진 금융기법이 수입되면서 주식,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이 발전하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제조업 발전의 도구로만 여겨져 왔던 금융업이 독자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진전이라 말할 수 있다.

필자는 금융과 관련해 외환위기가 가져온 부정적 효과는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직후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고령자 중심으로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이 이루어졌는데, 그 후유증이 이제 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고령층은 퇴직시키고 신입사원은 한동안 뽑지 않은 결과, 현재 금융기관의 연령구조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고참 직원과 30대 미만의 신입사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양 끝이 볼록한 아령 모양을 하게 되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인 40대 후반과 50대 초반 직원이 많다 보니 임원이 되기 위한 내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결과 쉰 살만 넘으면 명예퇴직을 시켰던 외환위기 직후의 관행이 지금까지 자체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일례로 임원이 되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재임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 자리라도 더 생겨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임원이 되더라도 회사 발전에 신경을 쓰기보다 퇴직 후 직장 찾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로 시작된 인력 구조조정이 평생직장 개념과 내부 승진 체계를 붕괴시키면서 직원들의 충성심 상실과 인력자본 손실이란 후유증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인력 구조조정 후유증 아직도…

외환위기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은 금융기관 임금을 급격하게 상승시킨 부작용도 초래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대손으로 처리했던 부실채권의 가치가 회수되기 시작하면서 은행들은 최근 대규모의 자산재평가 이익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인력 구조조정의 결과 임직원 수는 감소하였으니 회계상 직원 1인당 이익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는 큰 폭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자산재평가 이익은 지속될 수 없는 것이기에 영업 생산성과 관계없이 상승한 임금은 앞으로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평생직장 개념이 약해진 금융시장에서 어떻게 임직원의 영업 생산성 증가를 유도해서 높아진 임금을 상쇄할 수 있을지가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던져 준 어려운 과제이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채권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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