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인석]중국에 끌려다니는 한국증시

  • 입력 2007년 3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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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주가가 동조 하락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주식시장의 주가 하락폭이 두드러진다. 지난 1주일간 미국, 영국 등의 주가 하락폭이 4% 내외인 데 비해 아시아 주식시장은 그 두 배 정도의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아시아 주가의 상대적 몰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사건의 시발점은 중국이었다. 지난주 중국 정책 당국의 ‘위안화 절상’ 발언이 있었다. 그러자 상하이 시장의 주가가 폭락했고 뒤이어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조 하락했다. 사건의 진행 순서로 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그럴듯하다.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경제정책이 긴축 기조로 선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축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된다면 중국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고,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일수록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시장의 실제 움직임은 이 해석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주일간 주가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종목은 수출산업이 아니라 내수 업종인 금융업 등이다. 주가 하락폭이 중국과의 수출입 긴밀도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았다. 최근 아시아 주가의 동조 하락은 실물경제의 연관도보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의 설명이 더 맞는다. 지리적으로 근접한 국가라면 같은 투자 대상 그룹으로 분류해 버리는 국제금융시장의 행태가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주가동조화의 원인, 따로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헤지 펀드를 경영하는 지인에게서 e메일이 왔다. “한국의 은행 주가가 중국 등 여타 아시아 국가의 은행 주가에 비해 너무 싸다는 이야기가 미국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당신 의견은 무엇인가?” 중국 은행산업의 내막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별 다른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후진국인 중국과 중진국을 넘어선 한국의 은행을 동일한 투자 대상으로 비교하는 것이 다소 놀랍다”는 말만 했다. 우연찮게도 그 후 한국의 은행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있었고, 한국의 은행 주가는 최근 중국 사태가 있기까지 고공 행진을 했다.

국제금융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중국, 인도를 포함한 주변 아시아 주식시장과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한국 경제가 속한 ‘리그’는 중국, 인도 등 경제후발국에 비해 한 단계 위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국제금융시장은 여전히 ‘아시아는 아시아’라고 생각하며 지리적 근접성을 경제발전 단계보다 우선적으로 볼 때가 적지 않다.

객관적인 경제발전의 수준을 놓고 보면 분명 부당하다. 이런 억울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자본시장의 선진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남미의 주식시장이 요동친다고 해서 미국 주가가 동조 폭락하지는 않는다. 미국 주식의 가치는 미국 투자자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의 주식시장이 경색되면 선진국보다는 신흥 주식시장에서 그 여파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들 국가의 주식 가치는 아직 해당국의 국내 투자자가 결정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개인 투자자는 물론 기관 투자가도 ‘자국 기업의 가치에 대한 독자적 판단에 기초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외국인 투자자의 향배를 주시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신흥 주식시장과 차이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국내 증권사와 기관 투자가는 외국인 투자자의 눈치를 살피며 기업가치에 대한 선도적 판단과 소신 있는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 월가의 불안심리가 가라앉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합리성 여부를 떠나 외국인 투자자의 의사결정이 주식시장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산업 대표주자 키워야

근묵자흑은 지리적 근접성이 전염병의 감염 여부를 결정하던 아날로그 시대의 논리로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의 자료가 부족하면 우리 모두가 의존하게 되는 본능적 논리이기도 하다. 그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인도 있는 누군가의 이성적 설득이 있어야 한다. 그 ‘누군가’는 한국의 금융산업일 수밖에 없다. 전자, 조선 등 실물산업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기업을 만들어 내었듯이 금융산업에서도 세계적 명성과 평판이 있는 증권사와 기관 투자가가 나와야 한다. 그때까지 아시아와 한국 시장의 긴밀한 동조화는 ‘유쾌하지 않은 국제금융시장의 현실’로 남을 것이다.

신인석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 ishi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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